[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죽음을 면한 명창 권삼득

권삼득기적비/사진=전북일보 DB

지난주 언론에서는 전북도립국악원의 노후화된 교육시설 환경 개선 및 도민 편익증진 등을 위해 국악원 증·개축 공사를 다음 달인 3월에 착공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제 첫 삽을 뜬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게 다가왔다. 필자는 지난날 도립국악원의 학예교육실장을 지내면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는 것은 전북도립국악원 건물 앞에 세워졌던 국창 권삼득기적비(國唱 權三得紀績碑)로 잊을 수 없는 추억 속 사진 한 장과도 같다. 더욱이 국악원 건물은 지리학상 권삼득로란 곳에 있으니 전북도립국악원과 권삼득 명창과의 인연은 정말 특별하다 하겠다. 이에 추억의 사진을 더듬으며 권삼득 명창에 대한 일화를 잠시 꺼내어 본다. 

권삼득은 영조 47년(1771년) 명문가 권래언(權來彦)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를 통해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태어난 음악적 재질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권삼득은 명문 유가의 출신으로 천성이 영특하고 재주가 남달랐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의 일화다. 서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하은담이란 소리꾼의 판소리 춘향전을 듣게 되는데 이때 권삼득은 많은 감명을 받고 명창으로서의 꿈을 갖게 되었다. 이후 전주신청에 있는 하은담을 찾아가 본인의 뜻을 밝히고 제자가 되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하은담은 “양반가의 도령인데 차별도 심하고 천한 광대라 부르는 것을 뭐 하려 하려는가?”란 말을 남기고 거절한다. 그러나 권삼득은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광대가 되려 결심했습니다. 저는 광대가 되어야 할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심을 들은 하은담은 비로소 허락하고 소리 공부를 시작한다. 

이후 권삼득은 일취월장했다. 타고난 성음이 있어 그 음색이 청아했고 성량 또한, 풍부했다. 그는 2년간 스승 하은담의 가르침을 받아 춘향가 한바탕을 이수하였다. 하은담은 권삼득이 음악적 재질이 뛰어나 자신의 대를 이을 것이라 믿으며 정성껏 가르쳤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권삼득의 아버지와 문중의 어른들은 크게 노(怒)하고 질색하여 가문의 수치라 말하며 끝내 뜻을 굽히지 않으면 권씨 문중의 명예와 체면 보존을 위해 권삼득을 죽이기로 결의한다. 권삼득은 억울하지만, 문중 결의에 승복하며 “죽기 전에 소리 한마디 부르고 죽겠습니다.”라 청했고 문중 사람들 앞에서 춘향가 중 <십장가>를 불렀다. 춘향이 매 맞는 참혹한 광경을 권삼득이 얼마나 슬프게 불렀던지 이를 들은 문중 사람들은 감동하여 죽이는 것이 아깝다고 말하고 그를 족보에서 제명하고 쫓아냈다고 전한다. 

권삼득은 그 길로 운장산 위봉사에 들어가 절에서 머슴살이하며 수년간 각고 절차탁마(切磋琢磨) 끝에 득음(得音)하여 나라를 대표하는 국창으로 대성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