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선원사 불화서 '항일운동 태극기' 105년 만에 발견

1917년 11월 5일에서 17일 사이그려진 것으로 추정
불화에 태극기 그린 건 처음⋯검열 피하려 작게 그려

남원 선원사 '지장시왕도' 불화에 등장하는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사진제공=선원사 운문스님 측

태극기 말살 정책이 만연했던 일제강점기 시대에 항일 독립 의지를 담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가 105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27일 대한불교조계종 선원사 주지 운문스님 등에 따르면 선원사 명부전에 있는 '지장시왕도' 불화에 등장하는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 그림이 발견됐다.

그림인 불화에서 태극기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태극기는 사다리꼴 형태로 크기는 가로 8.3㎝(긴 변 기준), 세로 4㎝이며 가운데 있는 원의 지름은 2.8㎝다.

4괘의 순서가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건-감-곤-이 순으로 배치돼 있다.

이번 태극기는 지난해 11월 초에 명부전에서 기도 중이던 운문스님이 발견했다.

지장시왕도의 전체 크기는 가로 약 183㎝, 세로 약 171㎝인 가운데 일제의 검열의 피하기 위해 태극기가 작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태극기 연구 전문가인 송명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전문위원은 지난 21일 서울 대한불교역사문화화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땅에서 태극기를 걸 수도 없는 상황에 태극기를 그렸다는 것은 투철한 항일 독립정신을 나타낸 것이다"고 설명했다.

송 위원은 "근대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면서 "태극기가 오늘날 형태로 정착되기 전 단계인 1910년대 이후 사용된 독립운동 시대의 태극기 문양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태극의 문양은 일반적으로 적색과 파란색을 써야 하는데 눈에 쉽게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옅은 녹색을 쓰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덧붙였다.

'지장시왕도' 하단의 화기(그림의 내력을 쓴 기록)에 따르면 태극기가 제작된 시기는 1917년 11월 5일에서 17일이다.

특히 지옥을 관장하는 10대왕 중 제6대 왕인 변성대왕은 칼산으로 된 '도산지옥' 등을 관장하며 죄를 지은 자들을 심판하는 대왕이다.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는 점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운문스님은 "앞으로 또 다른 불화에서 태극기 그림이 나올 가능성을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며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국가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