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봄이 왔다. 남녘의 꽃소식에 향긋한 꽃내음이 잔뜩 묻어 올라온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다. 그래도 한순간에 사그라질 봄꽃이기에 제대로 즐기려면 자연의 주기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년간 축제를 열지 못했던 남녘 지자체들이 올해는 명성 회복을 위해 잔뜩 벼르고 있다. 수십 년을 이어오며 유명세를 탄 꽃축제가 가져올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잔치를 열어 떠들썩하게 즐기는 봄꽃으로는 역시 매화와 벚꽃을 꼽을 수 있다. 봄의 전령사 매화가 남쪽에서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으니 다음 차례는 꽃축제의 아이콘 벚꽃이다. 그런데 벚꽃은 언제부터인지 희망이 아닌 위기와 상실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의미로 지방대의 암울한 현실을 빗댄 이른바 ‘벚꽃엔딩’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누군가 반농담으로 던진 말이겠지만, 어느 순간 정설처럼 굳어져 회자되고 있다.
지방대는 올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올 봄 모처럼 캠퍼스에 활기가 돌았지만 대학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추가모집까지 안간힘을 쓰고서도 끝내 정원을 한참이나 채우지 못한 곳이 부지기수다. 신입생 충원율은 해마다 뚝뚝 떨어진다. 대학마다 온갖 자구책을 짜내며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한때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캠퍼스 이전을 추진했다. 대학위치변경계획을 세워 조금이라도 수도권에 가까운 지역에 제2캠퍼스를 조성하는 방안이다. 상당수 대학이 수도권 인근에 새로 조성한 제2캠퍼스에 주력 학과를 배치하면서, 정작 본교는 1년 내내 적막감이 감도는 껍데기로 전락했다. 결국 폐교의 비극을 피하지 못한 남원 서남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수도권을 지향한 지방대의 이 같은 생존전략은 지방의 위기에 무게만 보태고 말았다. 학령인구 감소와 인구절벽, 그리고 수도권 쏠림이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대학의 성장동력은 갈수록 약해진다.
‘벚꽃엔딩’이 어찌 대학만의 운명일까. 지역혁신의 플랫폼인 지방대의 위기는 해당 지역의 붕괴를 알리는 전주곡이다. 대학의 소멸은 결국 지역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벚꽃엔딩의 비극이 현실로 다가온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잔칫상을 차려놓고 상춘객을 불러야 하는 남녘 지자체의 현실이 안타깝다.
벚꽃은 남쪽 지방에서만 유명한 게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흐드러지게 핀다. 수도권 대학, 그리고 수도권 지역사회도 대한민국의 현실이 된 벚꽃엔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소멸은 지방 소멸, 나아가 대학의 위기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꽃과 함께 몰려오고 있는 지방대 소멸의 쓰나미를 지금 막아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활기가 넘쳐야 할 이 계절, 수도권 밖 지자체들이 희망을 꽃피울 수 있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