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김영삼 등 소위 양김씨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렸고, 또 한편에선 사쿠라 논쟁의 한복판에 서기는 했어도 소석(이철승)이 한창 정계의 중심에서 활동하던 시절, 전북민들은 사회 전반적인 호남홀대의 기류 속에서도 적어도 공개적으로 함부로 무시당하지는 않았다. 여권이든 야권 인사든 그의 앞에서 전북에 대해 함부로 말했다가는 공개적으로 뺨을 맞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단 소석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도 전북 출신 정치인이나 지도자 중에는 이런 결기가 있었다. 그래서 중앙무대 어디에서도 적어도 전북이나 전북도민이 공개적으로 비하당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전북은 동네북 신세가 돼버렸다. 중앙에 가서 제대로 투쟁하고 목소리를 전달하라고 뽑아보낸 정치인들이 각자 제살길만 찾아 눈만 껌뻑이면서 결기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7일 KBS1 라디오 프로그램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에 출연한 한 KBS 기자의 발언이다. 그는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의 서울 이전 찬반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제 친구 중에도 운용역(자금담당인력)으로 있다가 도저히 못 살겠다. 여기 소냄새 난다 돼지우리 냄새난다 (웃음) 그러면서 올라온 친구도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급기야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는 “지금 전주에 사는 65만명의 전주시민들은 모두 다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말인가”라며 “시청자들 항의가 빗발치자 KBS 자체 심의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프로그램이라고는 해도 할 말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이 따로 있는 법이다. 철없는 기자의 돌출 발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어이가 없다. 전북도민의 자존심을 짓밟아놨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전북에서는 “비하발언이 아니라 망언에 가깝다”고 분노하는 목소리가 진동하겠는가. KBS 노조까지 성명서를 통해 ‘KBS의 기본 가치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지역비하 발언’이라고 비판했겠는가. 어물쩡 이번 일을 넘겨선 안된다. 전북민의 자부심을 깡그리 짓밟은 행태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버르장머리를 확 뜯어 고쳐야 한다. 확실히 사과하고 응분의 조치는 물론, 재발방지책도 제시돼야 한다. 전북의 지도자들이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도민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모두 사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