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50원 동전 뒷면에 그려진 벼 모양의 문양. 그동안 잊고 지냈던 50원 동전 뒷면의 통일벼를 불쑥 생각나게 만든건 정부의 신동진 벼 퇴출 계획 때문이었다.
통일벼는 1970년대 우리나라의 식량난을 해결해준 ‘기적의 벼’로 불렸다. 보릿고개가 대변하듯 쌀은 항상 부족했고, 쌀 증산은 당시 국가경제의 핵심 과제였다. 이를 해결해준 것이 통일벼로 다른 품종보다 30%이상 높은 생산성을 보여 정부도 통일벼 재배를 권장, 1976년 재배면적은 40%를 넘어섰고 1977년 마침내 우리나라는 쌀 완전 자급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통일벼는 높은 생산성에도 미질이 좋지 않았고 냉해에도 취약해 점차 농민과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았고, 1992년 이후 자취를 감췄지만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준 ‘기적의 벼’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미 기억 뒤편의 오래된 이야기를 새삼스레 꺼낸 것은 남아도는 쌀이 문제라며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쌀적정생산대책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쌀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올해 벼재배면적을 3만7000ha 감축하겠다 밝혔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다수확품종, 즉 쌀생산량이 많은 품종을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쌀 공급과잉 해소는 논타작물재배지원 강화 등을 통한 벼재배면적 감축이어야지, 다수확 품종이라고 해서 소비자와 농민 모두에게 칭찬받는 품종을 퇴출시키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백번양보해 품종 전환이 필요하다면 쌀농가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고품질·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품종으로의 전환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특히 정부가 퇴출시키겠다 밝힌 신동진은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약 200여개의 벼 품종 중 가장 많이 재배하고 있는 품종이며, 전북은 전체 벼 재배면적의 53%를 차지해 ‘전북 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품종이다. 논란 끝에 신동진 벼 퇴출은 3년간 유예됐지만, 정부의 갑작스런 신동진 벼 퇴출의 배경을 두고 벼 품종 조차도 호남을 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사실 쌀 문제를 지역주의의 낡은 프레임 속에 가두려는 시도는 그전에도 있었다. 지난 1월,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쌀값 정상화를 위해 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의 이면에 지역에 있는 양곡창고 업자들의 배를 불리고, 정치인의 임기 연장이라는 정치이기주의가 숨어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2022년 4월말 현재 정부 양곡창고 3134개 중 전북·전남에 1635개가 있다. 양곡창고가 호남에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쌀재배면적과 쌀생산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전남이 재배면적 15만4670ha에 생산량 74만2913톤으로 전국 1위, 전북은 재배면적 11만3775ha에 생산량 62만1838톤으로 전국 3위다. 즉, 호남이 우리나라 쌀재배면적의 37%, 쌀생산량의 36.2%를 차지하고 있다.
쌀생산량이 많은 곳에 양곡창고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이를 양곡관리법 개정의 반대 논리로 포장해 본질을 왜곡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에 기가 찼다. 더구나 쌀문제를 지역으로 갈라치는 얄팍한 상상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쌀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농민의 문제이지 호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지역주의가 대한민국 공동체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중 하나인 마당에, 쌀 문제까지 지역으로 갈라쳐서야 되겠는가. 쌀의 가치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더 이상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원택(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김제시부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