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있던 나무는 왜 베어져야 했나요? 이 나무가 삼천의 물 흐름을 방해했나요? 이곳에 있던 나무는 우리에게 그늘과 풍광을 제공했을 뿐입니다.” - 전주시민
최근 전주는 나무 벌목 이야기로 소란스럽다. 수질, 수생태계, 수량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면서 ‘강의 자연성 회복’을 강조하는 시대적인 흐름과 달리 전주시는 지난 3월부터 홍수 예방을 위한 유지관리 목적으로 전주천과 삼천 13㎞ 구간에 걸쳐 과도한 하상 준설과 함께 야생동물의 서식처인 억새군락, 호안의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베어냈다.
특히 남천교에서 한벽당 구간의 버드나무와 억새군락은 여러 매체에 소개될 만큼 한옥마을의 명소이자 많은 전주시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현재 이곳은 잘린 버드나무의 그루터기와 억새군락을 밀고 꽃밭을 만들기 위해 이랑을 만들고 파종했다. 전주천과 삼천의 물길 가장자리에 자연적으로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와 억새군락은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의 선물이다. 전주천 자연하천조성사업 이후 20여 년 넘게 시와 시민이 함께 노력해 만들어진 생태하천은 도시의 귀한 자산이자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하천의 수변 식생은 야생동물의 은신처이자 서식처, 기후위기 시대 탄소흡수원으로 기능도 크다. 전주천에는 억새군락과 버드나무를 비롯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여울과 소, 하중도가 있어 수달, 원앙, 삵, 쉬리 등 법적 보호종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물과 물고기들을 불러 모았다. 이렇게 전주천은 민, 관이 함께 협의와 노력으로 자연하천 관리의 전국적인 모범이 되고 있었다.
이번 전주천, 삼천 벌목에 대해서 전주시는 “하천 통수 면적을 확보해 홍수를 예방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말만 되풀이 중이다. 하천 홍수에 영향을 주는 원인은 집중호우, 하천 지형, 유속, 도심 개발로 인한 지표면의 흡수력 감소 등 매우 다양하다. 하천 내 나무 역시 홍수에 영향을 주는 한 가지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전 조사와 벌목을 통한 홍수위 감소 자료 분석 등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 없이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민, 관이 함께 노력해 관리해왔고, 하천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그늘과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해주던 나무들을 시민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모두 베어내는 것이 통수 단면적을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 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나무들로 평소 전주천과 삼천을 산책하는 전주시민들도 의아함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글의 서두에 쓴 한 전주시민의 발언처럼 일부 시민들은 벌목과 관련해 ‘전주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냐’며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직 베어지지 않은 나무를 지키기 위해 직접 이름 적힌 푯말을 만들어 나무 앞에 꽂았다. 이에 지난 3월 29일 시민단체와 8인의 시의원,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무차별 벌목에 대한 전주시장의 사과와 전주천과 삼천의 경관과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하천 정책을 규탄했다. 이후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전주시청 앞에서 시민들의 1인시위와 함께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서명운동은 4000여 명 시민이 참여했으며,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은 “너무나 익숙한 우리의 풍경을 빼앗겼다. 너무 참담한 마음이다”, “전주천과 삼천, 그 속에 깃든 많은 것들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사라지기 전에는 존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모를 수 있습니다”, “슬픕니다. 전주시민의 추억이 담겨있는 나무입니다” 등 서명과 함께 하천 벌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전주는 버드나무의 도시라는 말이 있다. 한 예로 전주의 10경 중 하나인 제4경은 ‘다가사후(多街射帿)’, 즉 다가 천변 활터에서 활 쏘는 모습이다. 지금도 전주 다가공원에는 천양정(穿楊亭)이 있다. 1712년 조선 숙종 38년에 건립된 정자로 천양정은 궁도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300년 넘게 전주를 지켜온 유서 깊은 활터이다. 천양정의 ‘천양’은 ‘뚫을 천(穿)’ 자에 ‘버들 양(楊)’ 자를 쓴다. 말 그대로 ‘화살로 버들잎을 꿰뚫는다’라는 의미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신궁으로 불린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또한 태조 이성계의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와의 첫 만남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버드나무 설화를 볼 때 전주 곳곳에 버드나무가 심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올해 1월 한옥마을 오목대 숲 벌목을 시작으로 불과 두 달여 밖에 지나지 않은 3월에 전주천과 삼천에 자생하던 수많은 나무가 베어졌다. 나무의 수난 시대이다.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하천의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홍수 피해를 일으키는 쓸모없는 나무로 지목돼 잘려 나갔다. 도심의 하천은 인간만이 이용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사는 공간이다. 하천의 나무와 수풀에 몸을 숨기며 살아가던 생명체들은 갈 곳을 잃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베어진 나무를 다시 붙일 수는 없다. 다만 전주시에서 재난을 방지하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이유로 베어낸 나무들은 십수 년 동안 전주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생명에게 그늘과 풍광을 제공했고, 쉼터가 되어주었으며 겹겹이 쌓인 나이테만큼 추억이 담겨있었다.
/장진호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