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처음 가본 건 1995년이었다. 서울연구원 시절 해외 도시들의 구릉지 경관관리 사례조사를 위한 출장이었다. 가을 햇살을 받고 반짝반짝 빛나던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건물들은 지형과 어울렸고 서로서로 조화로웠다. 언덕 위 고층건물들도 흉하지 않았고, 언덕에서 바다를 보는 시야를 가린 건물도 없었다.
당시 서울에는 보광동, 옥수동의 구릉지에 들어선 덩치 큰 아파트가 보기에도 흉했고, 강변 쪽의 아파트로 인해 뒤쪽 언덕 위 주택들은 종일 해를 볼 수 없었다. 한강을 바라보던 시야도 차단되고, 고층에서 훤히 내려다보여 사생활 침해까지 심각한 상황이었다. 서울과 달리 언덕 위 건물들이 서로 피해주지 않고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구릉지 경관관리 비결이 궁금했는데, 시청 담당자를 만나 얘길 듣고 관련 자료들을 받아 꼼꼼히 공부한 뒤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972년 ‘도시디자인계획(Urban Design Plan)’을 세웠고 도시경관 관리의 원칙과 방법들을 여기에 담았다. 언덕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형태가 훼손되지 않도록 도시 전역에 일일이 최고높이를 지정했고, 높이 규제에 더해 건물의 전면폭과 대각선길이까지 제한했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는 고층건물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풍처럼 시야를 가로막는 덩치 큰 건물까지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북경에서 반년 연구년을 보내면서 북경의 역사도시 보전을 위한 엄격한 높이규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난개발이 횡행했던 1960년대와 70년대를 반성하며 1982년부터 시작했던 역사도시 보호 노력은 매우 엄중했는데, 자금성 가까이에는 새로 정해진 높이기준보다 높아 윗부분을 잘라낸 건물도 여럿 목격했다.
2006년 말 국립싱가포르대학에서의 한달 연수도 싱가포르의 개발과 보전정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리나베이 같은 신개발지역은 고층개발이 허용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 지역은 높이규제는 물론 건물의 형태까지 엄격히 규제한다.
우리가 감탄하는 아름다운 도시들은 모두 다 똑같다. 아름다운 도시경관은 결코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엄격한 규제의 결과다. 용적률을 완화해주면 그만큼 많이 지을 수 있게 되고, 개발이익은 상승한다. 개발압력도 당연히 커진다. 끝없이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 개발의 속성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용적률과 높이를 규제하고 건물의 형태까지 제한하는 것이다. 파리도, 런던도, 프라하도 예외는 없다. 그곳과 그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센티브 조닝(incentive zoning)’은 1961년 뉴욕에서 시작된 도시계획 수법인데, 공익에 기여하는 민간 개발에 용적률 보너스를 주는 게 핵심이다. 시애틀시도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폭발적인 개발붐을 맞게 된다. 30층을 넘지 않던 도심부에 이런저런 보너스를 받은 건물들이 60층까지 올라갔고 개발밀도도 껑충 뛰었다. 과도한 개발을 우려하던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고 나섰다. 매년 개발총량을 제한하고 용적률을 낮추며 최고 높이를 규제하는 ‘시민대안계획’을 1988년 11월에 마련했고, 1989년 5월 시민투표에서 62%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시애틀 도시계획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시애틀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름다운 시민들이 있어서다. 용적률 상향으로 고민이 많을 전주시민들에게 꼭 전하고픈 이야기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