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청목미술관, 이종만·이동근·오무균 '3인전'

오무균 작가 '갯벌'/사진=청목 미술관 제공

이 지역에서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세 명의 화가가 모여 3인전을 가졌다.

자기 모여서 3인전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꽤 전통이 있다. 이 지역의 3인전을 오래된 순서로 보자면, 고(故) 하반영, 고(故) 박민평-유휴열의 3인전이 있었으나 두 분의 작고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두 번째가 지금 말하려는 오무균, 이동근, 이종만의 3인전이며, 또 하나가 김두해, 이흥재, 선기현의 전시다.

오늘의 3인전은 특이하게도 같은 학교를 같이 졸업한 동기생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졸업한 지 20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결성되었다. 그들의 졸업 연도가 74년이고 98년에 결성했다 하니 얼핏 계산을 해보면 알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프랑스의 르 살롱전을 비롯하여 많은 대회에서 큰 상들을 수상을 하는 그들이 못내 부러웠었다.

비겁한 변명이겠지만 그들의 지도교수는 빨리 경력을 쌓으라는 것이었고 나의 지도교수는 "네 그림을 누구의 눈에 맞춰 그리냐"면서 극구 말리셨으니, 나중에 교사가 되고도 처음 공모전을 할 때는 서신으로나마 허락받고 출품했었다.

그들의 전시장에 가서야 받아 본 팜플랫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 명이 모두 동기이다 보니 이름을 쓰는 순서를 나름 정했을 것이다. 가장 쉽고 공통으로 쓰는 방법이 가나다순인데 거꾸로 되어있다.

의도된 것이 아니라면 여기에서부터 비합리다. 하긴 합리적인 머리로 어찌 그림을 그리겠느냐만 처음 얼굴부터 이렇다. 가나다순이면 오 씨가 먼저고 ㅈ보다는 ㄷ이 앞서는데도 말이다.

일찍이 내가 쓴 글 중에,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의 명동백작을 패러디하여 동문 백작이라는 별호를 써줘서 자, 타칭 동문 백작이 되어버린 오무균 작가는 몇십 년 전부터 갯벌을 주로 그렸는데 그의 마음처럼 따뜻하고 안정적인 수평 구도의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 항변이 있듯 수직으로 박혀있는 말뚝을 그려 넣음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견고하다는 수평, 수직 구도를 연출해 냈다.

그것은 그의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그 많은 술을 자주 마시면서도 절대 온화함을 잃지 않는 성격 때문에 자작이나 남작을 한꺼번에 뛰어넘어 단숨에 백작으로 벼락출세를 할 수 있었던 그가 아늑한 수평의 갯벌이라면,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막걸릿집에서 "저기요. 나도 말 좀 하게요."라고 치고 나오는 모습은 갯벌에 수직으로 박힌 말뚝 같다는 연상을 하니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종만 작가는 속필로 유명하다. 어느 화가에겐 붓질의 속도감이 아주 중요하다.

고(故) 최욱경 같은 추상 작가도 자기 키를 넘는 화면에 붓질의 속도를 나타내기 위해 캔버스에서 붓을 떼지 않고 사다리에서 뛰어 내린다.

그러나 이종만 작가를 속필이라고 한 것은 붓질의 속도도 그렇지만 이 전에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그 위에 다시 다른 색으로 겹칠 해 그 혼색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기도 하는데, 한번 시도해 봄 직한 기법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혼색할 색과 색의 관계부터 끊임없는 시행착오에서 나왔을 것이니까.

이동근 작가는 앞서 말했듯이 학생 때 이미 상이란 상은 모조리 주워 담을 만큼의 인상주의 화풍의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가 수십 년 전 학생 때 그렸던 그림들이 아직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 까닭으로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스타일로 그림을 바꿔 그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는 상상이 안 가는 정도여서 "저 그림이 동근이 그림 맞아?" 하면서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믿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른바 ‘생명’ 시리즈다. 그 좋은 테크닉들을 한꺼번에 귀양보내고 마치 아동화 같은 구도와 색채로 일관한다. 그냥 아동화처럼 원색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엄청나게 세련된 색채를 사용해서 "과연"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의 그림을 멀리서 보노라니 자개 농의 문짝처럼 선명하고 캔버스에 놓인 물감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배경색을 무채색으로 눌러버린 효과일 것이다. 아마 교수직도 버리고 작업실도 정읍 시골로 옮겨 눈과 마음 모두 청정해졌나 보다.

한 번에 한 명씩 다뤄도 지면이 모자랄 이 엄청난 작가들을 3인전이라서 같이 묶어 이야기하는 결례를 저질러 버렸다. 많은 후학이 보고 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