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문학관에는 풍류 선비가 산다

양병호 고하 최승범 문학기념사업회 신임 회장

한옥마을이 바야흐로 흥성거리는 봄날이다. 오목대 등성이에 핀 매화가 갸우뚱 궁금하여 눈을 비빈다. 한벽당 물가 버드나무는 연초록으로 볼이 물들고 있다. 뚝뚝 목련꽃 이우는 전동성당 뜰에는 이루지 못한 견훤의 꿈이 시들어간다. 경기전 돌담 안 은행나무는 다가올 가을의 찬란한 성숙을 묵상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복을, 근대복장을 차려입은 청춘들이 웅성웅성 봄을 바람피우고 있다. 매급시 설레고 싶은 마음을 고삐 풀어 방목하고 있다. 한옥마을이 탐방객들의 우세두세 봄놀이에 흐드러지고 있다. 평화롭기 그지없다.

한해 천만 명이 다녀간다는 한옥마을의 풍경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의 여울목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귀소하듯 찾아와 헝클어진 정체성을 정화하는 처소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아버지, 할아버지 삶의 들창을 들쳐보는 재미를 만끽하는 향촌이다.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부박한 삶의 바다에 전통이라는 닻을 내리는 희열을 맛보는 터전이다. 저기와 여기, 옛날과 오늘이 한바탕 신나게 온몸을 비비고 뒤섞는 통섭과 소통의 마당이다. 

그 한옥마을의 모퉁이에 고하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古河는 최승범(1931-2023) 시인, 수필가, 국문학자, 교수의 호이다. 고하 선생은 전북대학교 국문과에서 정년 퇴임한 뒤 그동안 평생 모은 장서 5만여 권, 희귀본과 고서 1,900여 권, 그림 400여 점을 전주시에 기증하였다. 이에 2010년 고하문학관이 설립되었다. 고하문학관에는 희귀본 문학 서적과 근현대 문학 자료가 시민들에게 열렬히 열람되기를 웅숭깊은 자세로 기다리고 있다. 한옥마을의 감각적인 겉핥기, 즉물적인 눈요기 탐방객들이 찾아와 고하의 풍류와 선비정신에 기꺼이 감염되기를 꿈꾼다. 

고하 선생은 60여 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남겼다. 시와 수필에는 고하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향한 애정이 아리잠직하게 서려 있다. 고하는 물질과 자본에 침식당한 현대적 삶에서 청빈과 줏대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물질을 향한 과도한 집착은 정신의 황폐를, 세속을 향한 탐욕은 영혼의 타락을 유발한다. 고하는 속 되는 것을 경계하고 염결한 삶의 자세를 추구하였다. 인생은 바람이라는 궁극을 따라 풍류를 추켜세웠다. 낭차짐한 삶의 여유를 즐기는 외유내강을 지향하였다. 끊임없이 자존을 갈고 닦는 수행에 엄격하고 꼿꼿한 선비였다. 

고하문학관은 아직 홈페이지도 없다. 고하의 풍류와 선비정신을 일목요연하게 체계화시켜 놓지도 못했다. 시민들에게 고하의 문학정신을, 꼿꼿이 살아온 행적을 알기 쉽게 전시 기획해놓지도 못했다. 고하문학관은 명실공히 “문학관”이로되, 실상은 고하가 기증한 도서를 시민에게 열람하도록 봉사하는 “도서관” 기능만을 소극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고하문학관은 전주시 도서관본부에서 관장하는 여러 도서관 중에서 매우 보기 드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도서관과 문학관을 아우르는 복합문화센터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수많은 문학관 중에서도 희귀도서, 유물, 유품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다만 이 풍부한 문학관의 자료를 효율적이고 아름답게 전시하고 기획할 체제와 구조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향후의 숙제이다. 앞으로 고하문학관이 전시와 기획을 알차게 수행하여 전주시의 문화 역량을 자랑하길 기대한다. 자본주의 먼지바람 함부로 불어대는 한옥마을, 허위허위 떠도는 탐방객들에게 고하의 매운 선비정신이 삶의 강장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전주가 키워갈 풍류와 선비정신이 전주를 키울 자랑스러운 줏대가 되기를 꿈꾼다. 바람이 분다. 꽃잎이 진다. 봄날이 가고 있다. /양병호 고하최승범문학기념사업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