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감꽃

황점복

하늘은 맑고 푸르다. 남편을 따라 수덕사에 올랐다. 초록으로 펼쳐진 산야가 한 폭의 거대한 동양화를 펼쳐놓은 듯 눈부시다. 오르는 길이 번뇌를 상징이기라도 하듯 108개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서 걷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는 소리에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숨이 거칠어지려 할 무렵 길가에 흩어져 있는 감꽃을 발견하고 눈을 들어 보니 커다란 감나무가 푸른 하늘을 우산처럼 가리고 있다.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감꽃 하나를 주워든다. 꽃은 내 안에 잠들었던 유년의 기억들을 일깨웠다. 고향 집 마당가에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그는 정이 많아 우리 집 나무라고 빼기는 나와는 달리 동네 모든 친구들에게도 언제나 가슴을 열어 주었다.

봄이면 지천으로 떨어진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목에 걸기도 하고 시곗줄을 만들어 손목에 차기도 했다.

감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낮게 뻗어서 아이들이 오르기에 편했다. 겁이 많은 나는 보통 때는 그중 가장 낮은 가지를 차지했지만, 간혹, 용기를 내어 두어 가지 더 높은 곳까지 오르기도 했던 이유는 장에 간 엄마가 돌아오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저 멀리 탑 거리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면 한달음에 달려갔고, 어머니는 마중 나온 내게 알사탕과 먹거리를 안겨주곤 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상처가 난 감은 삐져서 광주리나 채반에 널어놓았다가 감 껍질은 곱게 빻아서 제사떡 고물로 사용했다. 곶감이 반쯤 건조되어 말랑말랑해지면, 그 달콤한 향내의 유혹에 못 이겨 살그머니 장독대에 드나들기 일쑤였으며, 한겨울엔 장독대 항아리에서 꺼내 먹던 설정설정 얼음이 든 홍시의 맛은 세상의 어떤 과자와도 바꿀 수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아버지는 감나무 둘레에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넣어주거나 뒷간에서 거름을 퍼다 주며 정성을 들였다. 감나무가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들인 정성이었다. 나무가 강추위를 견디고 있을 때 우리는 그를 까맣게 잊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또 다른 놀이에 빠져 긴 겨울을 지냈다.

또다시 봄이 오고 감꽃이 필 때 서야 우리는 다시 그를 반기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무더위엔 감나무 그늘에 멍석을 깔아놓고 누워 있으면, 때맞추어 한꺼번에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이 소나타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감꽃이 불러온 어린 시절의 추억에 흠뻑 젖어 느릿느릿 걷다 눈을 들어 보니 계단 위에 올라선 남편이 혼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진다. 나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남편 앞으로 다가간다. 남편은 내가 여느 때와는 달리 왜 느리게 올라왔는지 훤히 알고 있는 눈빛이다.

수덕사 대웅전에서 무슨 예불을 드리고 있는 것일까. 바람 타고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해탈의 음향인 양 가슴에 와 안긴다.

황점복은 '문예연구'에서 등단, 시흥문학상, 맥스웰 커피문학상, 전국공무원 문예대전 <수필>행정자치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수필집 <빈손의 미학>, <아름다운 간격>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