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명분과 실리

일러스트/정윤성

백범 김구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중 거의 첫손에 꼽히는 사람이다.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는 상해에서 임시 정부를 이끌면서 사선을 넘나들때 어린 두 아들에게 삶의 궤적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한다. 나라가 독립되면 마당을 쓸고, 문지기가 되겠다는 대목에서는 가슴뭉클하다. 말은 쉽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호 백범(白凡)은  당시 가장 천대받던 '백정'과 '범부'(보통 사람)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세계대전이 끝난뒤 독립을 이끌던 사람이 새정부 최고지도자가 돼 적성국가에 빌붙던 이들을 처단하고 민족정기와 역사바로세우기에 앞장섰다. 유고슬라비아 티토, 베트남 호찌민, 프랑스 드골, 튀르키예 케말파샤 등이 바로 이러한 예다. 하지만 훨씬 많은 국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새 정부에서 찬밥신세였다. 신생 민주정부 대한민국 백범 김구가 대표적인 경우다. 전세계를 휩쓴 냉전의 와중에 강대국의 구미에 맞지않는 민족주의자의 앞길은 정부 지도자가 되기는 커녕, 천수를 누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이후 제3세계에서도 수없이 되풀이 되는 비극이었다. 

독립만 된다면 마당을 쓸고 문지기가 되겠다는 이가 전세계를 통틀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한 국가의 지도자쯤 되면 타고난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쳐도 사실 보통사람으로선 감내하기 어렵다. 특히 고관현직에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소위 하향지원을 하는게 쉽지 않다. 요즘엔 기수가 많이 파괴됐다고 하나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이나 경찰의 경우 퇴직 후에도 하방경직성은 강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 전북지역 관가 안팎에서는 남의 시선이나 기수, 서열 등을 의식하지 않는 현상이 매우 광범위하게 일고 있다. 얼마전 전북연구원장에 선임된 이남호 전 전북대총장의 경우 장관급 국립대총장을 역임한 이가 전북도의 연구기관 책임자로 임명된데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앞서 국토부차관과 도 정무부지사를 지냈던 최정호씨가 전북개발공사 사장에 지원해 최종 확정되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가하면 최근엔 행안부 차관을 지냈던 심보균씨가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선임돼 눈길을 끌었다. 차관급 인사가 전북도 개발공사 사장을 맡는 것도 이례적인데 인구 30만 안팎의 시 단위 도시관리공단 이사장을 맡았기에 더 그런것 같다. 작년엔 김관영 지사 취임 직후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광수 씨가 정무특보로 선임되고, 농림부차관 출신의 김종훈씨가 경제부지사를 맡기도 했다. 이젠 상향지원, 하향지원이라는 표현이 촌스럽고 의미없는 듯 하다. 명분이나 주위 시선 보다는 어느 자리에 있든 실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가 여부다. 할일 없는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어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역할을 하는게 가장 보람있고 보기좋은 모습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