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아침 일찍, 답사를 위해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로 향했다. 몇 번이나 미뤄왔던 터라 가슴이 설레었다. 답사 목적은 900년 전, 이곳을 다녀간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고려도경은 1123년 중국 송(宋)나라 사신단으로 왔던 서긍(徐兢)이 기록한 것으로 동아시아 중세 자료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역작이다. 당시 중국 황제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고려에 대한 최고의 첩보보고서이자 국책보고서다.
예전에도 몇 번 이곳을 다녀가긴 했으나 건성이었다. 이번에는 2009년 군산도(현 선유도) 전월마을 주민의 제보로 이 일대 지표조사를 실시했던 군산대 곽장근 교수가 안내를 맡아 믿음이 갔다. 일행은 송화섭 전 중앙대 교수와 이춘구 전 국민연금 감사, 곽병선 전 군산대 총장 등 7명. 우리는 고군산진(古群山鎭)터가 있었던 남섬 쪽에서 망주봉으로 유명한 북섬을 바라보며 설명을 들었다. 이어 망주봉 일대를 둘러봤다.
당시 송나라가 보낸 사절단은 정사와 부사 그리고 뱃사람까지 합쳐 1000명이 넘는 대규모였다. 한중(韓中) 외교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된 행사였다. 이들은 길이 150m의 관선(官船) 2척과 객주(客舟 민간선박) 6척에 나눠 타고 중국 절강성 명주를 출발했다. 곧 이어 흑산도- 위도- 선유도- 태안 마도- 영종도- 강화도- 예성항 벽란도를 거쳐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입성했다. 그리고 다시 같은 길로 돌아가기까지 3개월의 대장정이었다.
이중 주목되는 것은 군산도에서 20일 넘게 머문 일이다. 이들은 6월 6일(양력 7월 23일) 이곳에 도착했다. 고려는 이곳에서 국가 차원의 영접을 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이 직접 내려와 이들 사절단을 맞았다. 맞은 장소는 군산도에 우뚝 선 망주봉 가운데 있는 군산정(群山亭). 이 책에는 사신을 맞은 장소와 절차, 예법, 음식, 참석자 등과 함께 주변 경관이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망주봉 동쪽 기슭에 해양제사를 지내는 오룡묘와 자복사, 객관인 관아가 있었고 서쪽 산봉우리 남쪽으로 숭산행궁과 군산정이 있었다. 또 16세기까지만 해도 왕릉으로 추정되는 대형 무덤이 있었고 송방(松艕)이라는 선박이 건조되었다. 당시 군산도가 한·중·일 해상 교통의 기항지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 같은 사실 이외에도 군산도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후 12일 동안 머문 곳이다. 또 청자 등 해저유물의 보고다.
답사를 마치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망주봉 일대 유적의 발굴과 복원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이중 사신단을 맞았던 군산정의 복원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또 이 일대는 횟집이 들어서는 등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어 정비가 필요하다.
둘째, 복원과 함께 이를 대중국 관광과 외교에 활용했으면 한다. 당시 국제관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공(朝貢) 관계가 아니었다. 12세기 중국대륙은 송과 요(遼), 금(金)이 짱짱하게 국운을 걸고 다투는 시대였다. 따라서 송나라는 고려와의 유대가 절실했다. 그래서 황제의 칙서와 선물 보따리를 잔뜩 싣고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고려 또한 실리적인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오늘날 윤석열 정부의 미일(美日)에 경도된 외교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고려도경 900주년 행사를 마련해 경색된 한중관계에 물꼬를 터보면 어떨까 싶다. 새만금 관광의 화룡정점이자 한중외교를 지방에서부터 푸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차후에 남북한과 중국이 함께 참여한다면 더욱 의미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