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거리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2016년 칸국제영화제가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 다니엘의 뜨거운 외침이다.
이 영화는 노동자 계급과 빈민, 사회적 주제를 주목해온 로치 감독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다. 목수로 살아온 주인공 다니엘이 심장병이 악화돼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부딪치는 좌절과 저항의 시간을 담았다.
영국의 비효율적인 복지정책과 경직된 관료주의를 겨냥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로치 감독의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역대 가장 긴 시간(15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은 이 영화는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세계적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영화관들의 외면을 받았다. 영화 특성상 흥행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란 예측이 작동했을 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술(독립)영화관 상영만으로도 적지 않은 관객을 이끌어 냈다.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존재로 전락시킨 영국의 관료주의 폐해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공감한 관객들이 주는 답이었다. 그해 은퇴를 선언했던 로치 감독은 3년 뒤 택배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그린 <미안해 리키>로 돌아왔다. 역시 그답게 치열한 현실 인식으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한 영화였다.
지난달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는 켄 로치 감독을 또다시 주목했다. 87세 거장의 신작 <디 올드 오크>가 그 통로다. 영화는 황폐해진 폐광촌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의 이야기다. 역시 자본주의와 국가폭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해온 거장의 현실 인식이 바탕이다. 알려지기로는 영국 북동부를 배경으로 삼은 3편 영화 중 마지막 작품이다. 로치 감독은 철강과 석탄 등으로 번성했으나 2차산업의 쇠퇴와 함께 쇠락한 영국 북동부 도시들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단다. 쇠락해가는 도시와 소외당한 사람들의 삶이 중첩된 세 편의 영화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왜 주목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거장이 주는 답이 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또 그게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연대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디 올드 오크>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켄 로치 감독의 선물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