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끔 세종시의 명소인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가보면 젊은 부모와 함께한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 밝고 활기찬 청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평균 연령이 ‘37.5세’로 가장 젊은 도시인 세종시는 저출산 현상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합계출산율이 1을 넘었다.
그러나 이처럼 젊은 세종도 ‘지방’의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의료서비스의 부족이 그렇다. 세종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전국에서 가장 낮다(2022년, 1.29명). 세종뿐 아니라 전국의 다른 시·도 모두가 대부분 1~2명대에 불과하다. 서울만이 나홀로 3명대이다.(2022년 3.47명) 의료정책의 컨트롤타워인 보건복지부가 위치한 세종조차 기초 인프라에서부터 서울과 동등한 서비스를 향유하고 있지 못하다.
수도권 인구는 해마다 늘고, 나머지 지역은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비수도권 국민 2명 중 1명은 내가 사는 지역이 소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 생산, 고용, 기업 등 모든 자원과 기회는 전 국토의 11%에 불과한 수도권으로 지금도 몰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력은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지방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위기에 처한 지방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으면서도 그간 중앙의 해법과 노력이 의도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원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지칭할 때 이루어야 할 목표를 붙여 부르곤 한다. 과거 '산업화시대'의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통해 절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이루고자 했다. '정보화시대'라는 표현에는 IMF라는 국난을 정보화라는 혁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같은 맥락에서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그 결과로서 나타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미증유의 현상을 지방이 주도하여 타개하겠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 '지방시대'이다.
지방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부족하고 절실히 필요한지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제대로 안다. 세종시의 문제, 내가 자란 전주시의 문제, 또 다른 대도시의 문제와 해법이 서로 같을 수는 없다. 현장에서 그 지역이 겪고 있는 특유의 문제가 의제로 발굴되고, 발굴한 의제를 지역 사정을 모르는 중앙의 ‘심사위원’들이 만든 획일적인 해법에 의해서가 아닌, 지역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5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특별법'과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방이 위기를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정책결정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수립할 지방시대 종합계획은 더 이상 중앙에서 만든 채점표가 아니라, 지역별로 시급한 문제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들이 먼저 수립된 다음, 그것을 지방시대위원회가 수렴하는 상향식 계획이다.
'특별법'의 통과로 지방시대로 향하는 첫 걸음을 내디뎠다. 정부가 지향하는 진정한 지방시대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느 지역에 살든 상관없이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국토공간에서의 정의와 공정이 바로 세워진 시대다. 산업화, 정보화시대의 과제를 해결해낸 것처럼 이제 지방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이 함께 노력해 나갈 시기이다.
/최훈 행정안전부 지방자치균형발전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