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오모크 갤러리, 박종갑 초대전 '만경'(상)

박종갑 작가 작품/사진=이승우 작가 제공

그들(박종갑, 윤대라부부)이 콧등에 바람이나 쏘이자며 나를 꼬여서 간 곳은 긴 터널 6~7개를 지나서 두 시간 반쯤 달려간 뒤에 나타난 경북 칠곡군이라는 생전 처음 가 본 동네였다.

‘목도리 도매’라는 큰 글씨가 세련되지 못하게 있는 다음 동네에 3층짜리 건물에 omoke 갤러리가 바로 목적지였다.

1층의 주차시설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니 2층 입구에서 정면으로 단체 채팅방에서 영상으로 보았던 문제의 그림이 정면에 보였다.

224×1,464cm 크기의 그림은 우선 그 크기에 놀라고, 가까이 가서는 그 큰 화면을 신들린 듯 춤을 추는 그 붓놀림에 또 한 번 놀란다.

들으니 무박 2일에 완성했다 한다. 쉬었다가 다시 그릴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꼬박 밤을 새우고도 그 이튿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마 피카소가 부러워했다는 동양의 일필휘지의 심정이었나 보다.

만경강가에서 그렸지만, 만경강의 실경을 그린 것이 아니고 만경강이 보여주는 그 이미지를 다시 걸러내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려낸 것이었다.

이런 것을 진경산수라고 하고 의경 산수라고 한단다. 그림 중에는 한문을 추상화한 거 같은 문자 추상도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글이었고 그가 스스로 명명하기를 사방서(四方書)라 했다 한다.

즉 본인이 선택한 글자를 사방에서 겹치게 쓰는 것이었다.

글씨를 사방에서 중첩해 쓸 때 조형을 생각해서 굵게 또는 가늘게 씀으로써 굵고 가는 선들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들이 모여 바람직한 조형으로 보였다.

아무튼 그는 종일토록 그림을 생각하고 모든 자연 현상과 사물을 보는 쪽쪽 그림으로의 대입을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생각이 나면 에스키스를 하고 상자 속에 집어넣어 버리니 나중에는 그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본인도 잊었다가 전시회가 다가오면 그 상자를 쏟아내어 그럴듯한 것은 골라내고 선택받은 쪽지는 본격적으로 작품화시키는 것이 지금까지 일관된 작업 과정이라고 한다.

또 그는 자신의 심상을 표현하기 위해 표현에 걸맞은 붓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차에 치여 죽은 청설모 한 마리를 길에서 주워 왔다며 마치 금은보화를 얻은 듯 기뻐한다. 야생의 동물이기에 더 좋은 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집에는 유난히 동물들이 많다. 그 집 마당에선 고양이와 토끼가 같이 놀고 염소가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풍경이었다.

생각해 보니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결국은 최대한 자연 상태를 유지한 그들의 털을 노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섬유질이 많은 풀로도 붓을 만들어 초필(草筆)이라 한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나에게도 직접 만들었다는 긴 붓과 함께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들었다는 먹을 선물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