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나는 누구인가?

서 정 환

나는 누구인가? 자문해 볼 때가 있다. 그러면 타인이 생각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지만 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하고 추측하는 나를 만난다. 오래 만난 사이인데도 때로는 그 접점이 너무 멀어서 진정한 만남이 될 수가 없다.

언젠가 인사동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시간이 남아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네모진 돌에 앉아 넋을 놓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깨를 치며 나타난 친구는 "뭔 일 있느냐?"며 심각한 얼굴이다. “아무 일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다그친다. 찻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돌위에 앉아 멍때리고 있었으니 아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라 지레짐작을 한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은 겉모습이다. 나는 회사에서 작업복을 입거나 점퍼 차림으로 일을 한다. 그래서 처음 찾아오시는 분들은 작업복 차림만 먼저 사장을 찾는다. 그러면 '제가 사장'이라고 하면 당황한다. 요즘에는 가급적 정장을 하고 다닌다.

두 번째 기준은 과거다. 학교 다닐 때 만난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은 말할 것 없고 사업상 거래로 만나며 느낀 인상으로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먼 과거의 이미지를 나의 참모습이라 기억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것은 사실 몇 달 전, 혹은 몇 년 전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람이 지금은 변화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 절대로 달라질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인간이 자신의 편견과 판단에 대해 갖는 신뢰는 실로 놀랍다.

니체가 말했던가. “우리는 자주 오해를 받는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봄마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나무와 같다.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젊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고. 

누군가의 현재를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계속 자라며 가지를 뻗는 나무 같아서 매일 변화하고 껍질을 벗기 때문이다. 날마다 만나는 관계이거나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 할지라도 지난밤 혹은 오늘 아침, 내가 어떤 내적 변화를 체험하고 낡은 옷을 벗었는지 알 길이 없다.

사람들은 상대의 이름을 알지만, 상대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상대가 해 온 것들은 들었지만, 상대가 겪어 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가 말하는 나가 아니라 '누구여야만 하는', '어디에 있어야만 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살아 있는 존재이므로 매 순간 다른 나이고,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나다. 따라서 타인이 생각하는 나나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모습을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불행과 불만족이 시작된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가진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 자신은 하나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는 무수한 모습들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호랑이 줄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는 속담이 있다. 그 내면의 줄무늬는 타인이 읽어내기 힘들다. 그 줄무늬는 삶 속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성장과 변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기 때문이다. 밖에 있는 줄무늬는 읽을 수 있지만 속에 들어 있는 줄무늬는 알 수가 없다. 평생을 함께 살아도 그 속을 누가 안다고 할 것인가?

 

△서정환 수필가는 '신아미디어'를 경영하고 있으며 <문예연구>로 등단 했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전주문화원이사, 전북수필문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동백꽃사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