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주택 세입자로, 전세 계약기간 만료가 2달 앞으로 다가왔다. 중개업자는 의뢰인에게 신규 임차인을 구하기 위해 다가오는 주말에 집을 보여 달라고 했고, 의뢰인은 그다음 주말에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중개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싫으냐며 물었다. 의뢰인은 본인이 얻어 쓰는 것도 아닌데, 살고 있는 집을 보여주는 게 맞냐며, 자신에게 그러한 의무가 있는지 물어왔다.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가정이라는 가장 내밀하고,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을 외부인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으로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고, 모르는 사람이 내 집을 드나들게 하는 것으로 유쾌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집을 보여주는 문제로 임차인과 임대인 간에 분쟁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집을 보여주지 않아 새 임차인을 빨리 못 구한다며 악성 임차인이라고 하고, 임차인은 임대인의 요구가 과하다며 내가 그러한 의무가 있는지 묻는다.
우리나라 밖에서는 좀처럼 집 보여주기 문제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전세제도 때문이다. 임대인이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고, 다음 집을 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적기에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사생활 침해를 포기하고 집을 보여주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임대인이든 임차인이든 민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 어디에도 임차인이 계약 만기를 앞두고 집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는 조항은 없다. 임차인은 보증금을 위해 협조할 뿐이지, 그 누구도 임차인의 집을 들락날락할 권한은 없다.
만약 임차인이 새로운 집을 구할 돈이 충분하다면, 임대차기간 종료 후 주택 인도와 함께 임대차 등기를 받고, 지급명령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여유는 없다. 임차인에게 전세는 기본적으로 위험한 제도로 분쟁 없이 큰돈을 돌려받는 게 중요하니, 가급적 협조하라는 것이 가장 적합한 조언이 될 것이다.
/최영호 법무법인 모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