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동의 함무라비법전

전주시 만성동 법조타운 뒤편에는 작은 공원이 있는데 인류 역사를 관통하면서 현행 법 체계의 기반을 닦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던 주요 법률이 소개돼 있다. 그중 눈에 띄는것은 바로 함무라비법전이다.  지금부터 약 3800년전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왕 때 편찬된 최초의 성문법인데 로마법대전, 나폴레옹법전과 더불어 세계 3대법전중 하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함무라비법전은 죄에 상응하는 강한 징벌을 담고있는게 특징이다. 예를들면  “누구든 남의 집으로 들어가는 구멍을 뚫으면(훔치기 위하여 뚫고 들어가면) 그 구멍 앞에서 죽여 묻는다” 라든지, “집에 불이나서 불을 끄러 온 사람이 그 집 주인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그집 주인의 재산을 취하면 그 사람은 바로 그 불속에 던진다”하는 식이다. 무자비한 처벌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엄격한 제재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려 4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건축업자와 선원’  부분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 “건축업자가 타인의 집을 지을 때 견고하게 짓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죽었으면 그 건축업자를 죽인다∼ 건축업자가 타인을 위해 집을 짓는데, 집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균열이 발생할 경우 건축업자는 자비로 그 벽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어야 한다.” 등등. 수천년 앞을 내다본 것인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법전이다. 

만일 함무라비법전이 오늘날 통용된다면 당장 죽어야 할 사람이 엄청 많다. 순살아파트와 관련된 사람을 함무라비는 과연 지금처럼 가만 놔눴을까. 아니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 바로 묻어버렸을까. 1970년 4월 8일 서울시 창전동 와우산 자락에 들어선 와우아파트의 경우 철근 70개를 써야 할 기둥에 겨우 5개를 집어넣었고 콘크리트는 자갈 섞인 모래 반죽이나 다름없었다. 결과는 붕괴로 인해 아파트 주민 33명과 판잣집 주민 1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를 기치로 내건 불도저 서울시장 김현옥의 일처리 방식이 조종을 울리는 대형 참사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1994년 성수대교 붕괴가 있었고 1995년엔 삼풍백화점 참사가 있었다. 시스템의 붕괴와 원칙의 파괴가 부른 인재라며 야단법석을 떨었으나 2023년 지금도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다. 이름도 생소한 순살아파트. 무량판 구조는 대들보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을 떠받드는 건축 방식이다. 설계, 시공, 감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무량판 구조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공사 관행과 ‘무조건 더 싸게’를 강요하는 비용 절감이 무리하게 추진됐다는 얘기다.  2000년 전, 로마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서두르되 모든 상황을 잘 따져보고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지향점이 어디인지 명확히 해야한다. 우리 주위에 순살치킨이 아닌 순살아파트가 있어선 안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