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담화 계승의 속내

일러스트/정윤성

19938, 일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했으며 일본군이 관여해 강제 동원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고노 장관은 일본군의 요청으로 위안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와 위안부 이송에도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시인하면서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공식적인 발표, ‘고노담화’였다.

실제 고노담화가 있고 난 뒤 일본 교과서에는 위안부 관련 기술이 늘어났다. 1995년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담아 ‘전후 50년 담화’를 발표했으며 1998년에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라고도 명명하는 한일공동선언이 이루어졌다.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고노담화가 이어낸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노담화의 의미와 효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 우익세력의 반발과 공격으로 담화를 파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국제적 관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속내와는 달리 담화 계승을 내세워왔던 일본 정부가 속내를 드러내며 공식적으로 입장을 바꾼것은 아베 정권이다. 아베는 결국  ‘고노담화 검증’을 정부 차원의 과제로 만들었다. 지난 2014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가 그 결과물이다.

이 보고서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의미를 부정하며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폄훼했다. 곧바로 이어진 반향은 중고등학교 교과서 수정부터 시작됐다. 고노담화는 물론이고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은 줄어들 대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2021년에는 스가 내각이 나서 종군 위안부란 표현을 위안부로 바꿀 것을 결정했다. 이듬해에는 이러한 결정이 검정교과서에 반영되면서 교과서 대부분이 수정됐다. 알려지기로는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중 고노담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는 1종뿐이다.

고노담화 발표 30년을 맞은 지난 3,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기본적 방침’199384일 내각 관방장관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기본적 방침은 그렇지만 방향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일까. 담화의 의미를 사실상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계승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교활한 정치적 속셈 뒤에 감추어진 일본 정부의 민낯이 강조될 뿐. 그래서인가. 한일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지금, 고노담화의 의미가 더 새롭다. /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