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의 불편한 진실

잼버리 개막을 앞둔 지난 5월 새만금 현지에서 조직위 위원급 대상으로 실사가 있었다. 당시 폭우로 인해 야영지 침수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다. 하지만 공동위원장 5명 중 장관 3명과 함께 대상자 상당수가 불참해 다소 맥빠진 분위기로 진행됐다. 뜨거운 감자였던 침수 대책은 조직위 측이 사전 준비한 코스를 둘러보며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하자 이를 취재하던 기자가 주변 깊게 패인 물웅덩이를 가리키며 거칠게 항의했다. 눈가림식 전시 행사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꼼수를 질타한 것이다. 대규모 국제대회를 앞두고 조직위 청사는 긴박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도 폭우와 폭염 대책에 대한 참석자들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조직위는 만반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대회 관계자들은 말끝마다 158개국 4만3천여명의 역대 최다 참가 기록을 띄우면서 마치 성공 예감한 듯 자신만만했다. 나중에 잼버리 파행을 겪으며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 화를 자초한 건 아닌지 곱씹어 봤다.

매머드 조직위 구성을 보면 ‘불안한 동거‘ 기류가 감지된다. 지난 2020년 발족할 때부터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중심 체제로 운영해온 건 사실이다. 뒤에 합류한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스카우트연맹 등도 주축을 이뤘다. 문제는 부서 폐지 논란에 휩싸인 여가부 존재감이 약해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부서가 해체 위기에 몰렸는데 그들에게 순도 100%의 열정을 기대하긴 무리다. 조직위 사무총장도 여가부 출신이다. 여기에 언론, 홍보를 담당하는 본부장은 행안부 출신이 꿰차고, 실무 준비는 스카우트연맹 전문가의 몫이었다. 이처럼 복잡한 인적 구조와 운영 체계는 결국 신속한 의사 결정의 걸림돌이 된 셈이다. 

대회 직전까지 최대 골칫거리는 야영지 침수였다. 2-3차례 내린 호우로 침수 문제가 언론에서 연일 뭇매를 맞자 관계자들도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침수 해결책 마련에 골몰하는 사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작 파행 사태를 부른 건 극한의 폭염이었다. 심술궂은 날씨 탓에 조직위의 허술한 운영 능력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새만금 상황과 판박이인 8년 전 일본 잼버리의 학습 효과도 충분했다. 간척지 여건과 습도, 해충, 침수는 물론 온열 환자 속출도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은 개막 2년 전 예비 대회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성공 개최를 이끌었다.

필자가 실사 현장에서 만나본 조직위 관계자들은 4만3천여명의 역대급 참가 기록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언론도 뒤질세라 이 참가 기록에 의미 부여하며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정도 열기가 뜨거웠다면 조직위로선 자랑거리 보단 부담을 갖는 게 먼저다. 지구촌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다. 폭염과 푹우가 예상되는 8월 초 나무 한 그루 없는 간척지 허허벌판에서 야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김영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