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가을 숲길-박일소

가을 햇살이 내려

흙담 너머로

빨간 고추가 익어가고

 

황금물결 출렁이는 들길

낡은 모자를 둘러쓴 허수아비 손짓에

알밤 익는 소리

 

추녀 끝으로

맑게 갠 하늘이 들어와 앉는

숲길을 걸으면

 

그대 향기에 취해

붉어진 얼굴로

들꽃만 본다.

 

△ 가을을 부른다. 두 손 오므려 나팔을 만들고 큰 소리로 가을을 불러본다. 된더위가 놀라 뒷걸음칠 때 가을은 초록을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수채화를 그리기에 바쁠 것이다. 논두렁을 오가는 아버지 발걸음이 아닌 허수아비의 늙은 모자가 새를 불러올 가을이 뛰어올지도 모른다. 허수아비를 보고 가을이라고 손짓하지 않을까. 가을이여! “빨간 고추가 익어가”기 전에 코스모스와 들국화꽃 꽃바람을 타고 오시게나./ 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