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우’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 원수 에르빈 롬멜을 지칭하는 별명인데, 오죽하면 윈스턴 처칠 조차도 적장에 대해 “전쟁의 참상과는 별개로 평가한다면, 저는 롬멜을 위대한 장군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선거판에서도 일찌감치 여우가 있었는데 엄창록, 바로 그다. 동교동측 특급참모였던 그는 1971년 대선 직전 갑자기 사라졌는데 얼마후 영남지역 전봇대에 매우 휘발성 강한 유인물이 나붙었다.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이는 호남향우회 등에서 뿌린게 아니었다. 지역감정을 자극해 영남쪽 몰표를 노린 지역감정의 설계자가 놓은 덫이었다. DJ 진영에서는 이를 (여당에 포섭된)엄창록의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1992년 대선 직전인 12월 11일 부산 지역 유지들이 모여서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한 소위 초원복집 사건도 그 연원은 사실 선거판의 여우이자 지역감정의 설계자 엄창록의 전략을 살짝 컨닝한 것에 불과했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그야말로 올인 태세다. 정계 실력자들은 말 한마디, 제스처 하나도 쉽게 구사하는게 아니다. 당장 별 의미가 없어보여도 훗날을 염두에 둔 심모원려한 포석이다. 전북은 요즘 민심이 들끓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직전의 심각한 상황이다. 무려 33년 전부터 시작돼 일정한 로드맴에 의해 추진중인 새만금사업이, 불과 6년전 갑자기 하나 끼워넣은 잼버리로 인해 중단위기에 직면한 때문이다. 정부 각 부처에서 면밀한 검토를 거쳐 편성된 새만금SOC 관련 예산이 기재부 심의단계에서 무려 78%나 싹뚝 잘린것을 목도한 도민들은 충격과 허탈 그 자체다. 잼버리 실패를 빌미로 이렇게 한 것인데 한편에서는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고도의 외곽때리기 전략으로 해석한다. 기재부장관은 하나의 집행자에 불과할뿐 실질적 디자이너는 지역감정의 설계자라는 것이다. 폐부를 찌르는 정확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호남권을 통틀어봐야 집권여당은 잘해야 한두석 얻을텐데 구태여 가성비 낮은 곳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을 필두로 한 영남권 예산폭탄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귀여운 자식 하나만 대학에 보내고 다른 자식들은 학업을 중도포기하겠다는 메시지다. 다만 수도권의 경우 적은 표 차이로 당락이 좌우될 소지가 큰데 상대적으로 호남 출신 유권자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호남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제시된 카드가 전북을 희생양 삼은 호남갈라치기 전략이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새만금SOC 없는 예산안 통과는 없다”고 호언장담 하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을 확보한 타 시도 국회의원들의 진정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문제다. 사소한 듯 해도 새만금 SOC 예산안 편성의 이면엔 지역감정의 설계자가 있을 수 있다. 훗날 역사는 그 디자이너를 찾아낼 수 있을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