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축제의 뿌리

일러스트/정윤성

판소리의 세계는 광범위하고 표현력이 강하다. 가사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변화 있는 리듬을 끌어나가는 기법이 기술적이고 인상적이다.”

오래전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초청된 미국의 재즈뮤지션 이안 라쉬킨은 젊은 소리꾼과의 즉흥연주를 준비하며 판소리를 이렇게 평했다.

2004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특별히 주목받은 무대가 있다. ‘판소리와 재즈’. 한해 전 신나라레코드사가 전라북도와 손잡고 내놓은 음반 <판째>를 무대로 옮겨내는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무대에는 음반 작업을 주도했던 음악감독 이안 라쉬킨과 릴 윌슨, 에반 부엘러, 조쉬 스튜어트, 크래그 플로리 등 미국의 재즈 뮤지션과 장문희 임현빈 정은혜 이상호(고수) 등 젊은 소리꾼이 함께 섰다. 연주곡은 진도아리랑’ ‘성주풀이등 민요와 수궁가를 비롯한 판소리 다섯 바탕의 눈대목. 한국전통음악을 소재로 한 재즈 음반 '조선지심'을 냈을 정도로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과 식견이 높은 이안이 편곡한 곡들이었다.

우리 음악과 서양음악의 결합은 그 이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재즈 역시 한국전통가락과 비슷하다 하여 김덕수사물놀이패나 이생강의 대금사물놀이가 일찍이 접목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해 판소리만으로 재즈가 결합하는 무대는 새로웠다. 기왕의 크로스오버 작업이 우리소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는 형식이었다면 이 무대는 판소리재즈라는 독립적 영역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융합하는 적극적인 협업(?)이었기 때문이다.

무가로부터 온 판소리나 흑인 민속음악으로부터 발전된 재즈는 즉흥성을 모태로 공통적 특성이 적지 않은 장르. 표현력 강한 이들의 결합은 확실히 더 흥미로웠다.

스물두 번째 전주세계소리축제가 915일 막을 올린다. ‘상생과 회복을 주제로 한 열흘 동안의 여정이 풍요롭다. 프로그램의 두 축은 역시 전통음악과 월드뮤직이다. 그 절정에 우리의 판소리가 있다. 그중에서도 김일구 김수연 정순임 신영희 조상현 명창이 이어갈 국창열전은 완창판소리를 내세운 세 시간짜리 소리판이다. 득음의 경지를 향한 소리꾼들의 고행은 완창판소리로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다섯 명 명창들의 무대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돌아보면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판소리의 존재로 그 의미를 얻었다. 판소리 대중화다 세계화다 하여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형식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지만, 그 바탕은 아무래도 전통판소리의 건재여야 한다. 판소리의 판은 무대와 객석이 따로 가지 않는다. 무대 위에 서는 소리꾼은 치열한 자기 세계로 객석과 소통하고 객석은 소리꾼의 몸짓에 화답한다. 올해 축제가 판소리를 더 주목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