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행복은 코끝에

황복숙

남편과 전주천 산책로를 걸었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억새밭 사이를 걷다 보니 솜털 같은 억새의 검은 씨앗이 온몸에 매달렸다. '야, 우리 눈 맞은 거 같아.' 날씨는 아직 여름인데 진눈깨비를 맞은 듯 희끗한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 싸늘함이 전해졌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젊어서는 한 걸음이라도 지름길을 찾아 빨리 갈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찾아 나섰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풍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길이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억새밭 사이를 걷다 보니 눈앞에 연분홍, 자주, 보라색 코스모스 꽃밭이 펼쳐졌다. 자주색 꽃잎 한 장을 따 코끝에 붙였다. 그리고 바람을 후후 불었다. 꽃잎은 부르르 떨어질 듯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살아가는 삶도 그랬다.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나의 삶도 축복받은 삶이라기보다 안쓰러움이 더 컸다. 병원이 없던 시절이라 마을에 홍역이 돌면 건강한 아이들이 홍역에 걸렸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위로 셋을 잃고 당연히 아들이라고 믿었는데 또 딸이었으니 생명에 대한 기쁨보다는 위로받지 못하는 섭섭함으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당시에는'야, 신난다. 딸이다 딸!'하고 박수받으며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섭섭이들이다. 세기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져도 딸들은 섭섭이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별생각을 하면서 걸어도 꽃잎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자네 얼굴 웃기고 있는 것 알지?"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끄떡이자 꽃잎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가위, 바위, 보, 해서 꽃잎 8장 먼저 떨어뜨리면 이기는 거다." "재미있겠네, 이런 놀이" 이제 나의 삶은 둘째 딸로 태어난 섭섭이의 삶이 아니었다. 복둥이의 삶을 살고 있고 코스모스 꽃잎 8장 중 6장을 뗀 이순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다시 코끝에 코스모스 꽃잎을 붙이고 꽃잎을 후후 불면서 그때를 떠 올렸다. 오래된 편지처럼 젊었을 때 시내버스를 타고 함께 종점까지 가는데, 버스 속이 추워서 손을 호호 불며 갔던 그 날을 아련하게 떠 올려 본다. 그날은 몹시 추웠다. 인적이 드문 버스 종점에서 얼마를 걸었을까? 걷다가 배가 고파 다시 돌아왔던 날, 내 키보다 긴 그림자가 기다랗게 기울던 해질녘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고, 신작로에서는 나뭇잎이 가볍게 촐랑이며 날아다녔다.

지워져 흐린 글씨의 낡은 표지판이 있던 종점 주변에는 내 키보다 훌쩍 큰 코스모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다. 따뜻했던 날들 그리고 슬플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코스모스 꽃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위로였다. 위로는 말이 아니라 산들거리는 코스모스였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꽃잎 먼저 떨어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면서 활짝웃는 남편의 주름진 웃음이었다.

코스모스가 낭창낭창 흔들리고 억새꽃이 눈송이처럼 사뿐사뿐 흩날리는 전주천 산책로를 걸으니 멀리 코스모스 하늘이 내려앉고, 바람이 불며 흔들리는 가을 햇살에 가슴이 뭉클 했다. 늙었어도 지금 이 순간이 좋다. 그리고 벅차다. 따뜻해서 울듯이 행복했다. 사람들은 가을이 차가운 계절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따뜻한 가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삶, 그 아름다운 풍경 이 곁에서 함께 하고 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 코끝에 달려 있었다.

△황복숙 수필가는 <수필과 비평>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전북문협. 대한문학작가회, 전북수필문학회, 은빛수필 문학회, 온글문학 회원으로 있으며 안골은빛수필문학상 농촌사랑 공모전 은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그리움이 사는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