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은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있는 도시인데 인구는 80만명이 채 안된다. 그런데 이 도시는 걸출한 기업인과 글로벌기업을 대거 배출한 지방도시로 매우 유명하다.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는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코스트코, 아마존의 발상지가 바로 시애틀이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시애틀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장악했다. 풍부한 기업운용 자금과 스타트업에 불과하지만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촘촘히 연결해주는 네트워크가 형성된게 시애틀 기업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도 K-기업가정신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곳이 있는데 바로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이다. 승산마을은 LG그룹을 창업한 ‘능성 구씨’와 GS그룹을 창업한 ‘김해 허씨’ 들이 수백 년 동안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부자마을이다. 승산마을 한가운데 있는 옛 지수초는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창업주를 비롯,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허준구 GS그룹 명예회장, 구태회 LS그룹 창업주,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등 국내 굴지 기업 창업가 30여 명을 배출한 기업인의 산실이었다. 옛 지수초는 지난해 3월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국내외 기업인에게 전수하는 ‘K-기업가정신센터’로 변모했다. 승산마을이 속한 지수면은 ‘지혜로운 물’을 뜻하는 ‘智水’다.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눠 더 크게 만들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승산마을 앞에는 방어산이 있는데 부자들은 방어산 자락에 걸린 새벽별을 보면서 하루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삼성,효성은 말할것도 없고, LG·GS의 전신인 금성 등 이름엔 모두 별이 들어 있다. 이 마을이 배출한 기업가들이 이룬 매출액은 연간 800조원에 이른다. 진주 기업가정신의 뿌리는 '실천 유학'을 강조한 남명 조식의 '경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한국의 재벌은 정경유착의 길을 택하면서 급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하지만 불굴의 기업가 정신을 토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들의 성취는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지역간 극한 경쟁시대를 맞아 커보이는 남의 떡을 부러워만 할 때가 아니다. 급성장을 거듭하던 산업화 당시와 달리 지금은 일거에 도약하는게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 하나로 수년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지역에서 창업한 기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풍토를 갖추는 것은 제1의 조건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렵게 전북으로 유치한 기업들이 굴지의 업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결국은 지역민들이 사는 첩경이다. 기업인에게 돌을 던지고 기업활동에 배타적인 지역에는 미래가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