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우진문화공간, 이희춘 개인전

이희춘 작가 작품/사진=이승우 작가 제공

전주 우진문화공간 전시실에서는 11일까지 이희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 입구부터 인물 군상이 눈에 보인다.

정보가 전무했던 나는 잘못 알고 온 줄 알았다. 불과 2년 전쯤 교동미술관 개인전에선 ‘화양연화’라는 제목답게 큰 꽃들을 많이 그렸다.

가장 화려했던 영광의 나날들을 그리기에 꽃이라 쓰고 아름다움이라 부르는 꽃을 그리는 것으로 설정해야 마땅했으리라. 그런데 인물화라니.

전시장에는 유난히 인물화들이 많았다. 화양연화의 시각과 생각이 아직 이어지는 꽃과 인간이 어울리는 그림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새로 제작한 인물화였다.

모델링보다는 추억 속의 인물들을 그렸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밀 묘사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본다면 더 그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 만큼 그리다 말은 그림처럼 묘사는 많이 생략했다.

마치 대상이 중요하지 않은 스쳐 가는 사람들처럼, 제3자의 눈으로 무심하게 보는 것 같았다. 담백한 눈길이었다.

대신 그 붓질 하나하나엔 인간미가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로트렉이 바로 연상됐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다시 말하자면 전공을 하기 위해 전통 산수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구도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으나, 애써 살피자면 채색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 필요 없이 굳이 찾아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의 개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알다시피 그림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름다움"이라면 바로 개성만이 아름다움이다.

국내 최초로 15세기에 세종대왕의 명령으로 수양대군이 한국어로 번역한 불경 석보상절에서도 아름다움은 ‘나답다’로 번역됐다.

또 ‘아름’은 ‘앎’으로 번역되어 지(知)의 뜻이 되기도 하지만, 아름은 두 팔 벌린 한 아름, 두 아를 등으로 생각해 아름 속에 들어온 것은 내 것이라 한다.

곧 아름다움은 내 것다움이고 내 것다움을 한문으로 하면 개성이 된다. 느닷없는 인물화는 짐작건대 최근의 파리 체류에서 얻어진 발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타국에서의 외로움 때문에 절실히 생각나는 고국에서의 만남이 흑백사진 속의 추억이 돼 인물화 속에서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파리 체류 시에는 수십 년 전 이 지역 출신으로 파리에 유학을 갔다가 머물며 성공한 손석이라는 작가가 있어, 그 집(작업실)에서 숙식하며 안정된 마음으로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제는 파리시민이 되어버린 손석 작가는 군산의 근대미술관에서 지금 전시하고 있다. 군산에도 작업실을 마련했다 하니 파리와 군산을 오가며 작업을 할 모양이다.

옛날에 샘 프란시스의 작업실이 뉴욕과 동경,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러운 마음이었는데, 비로소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이희춘 작가는 이번 우진문화공간에서의 전시가 끝나면 또 한 번의 파리 전시를 하기 위해 도불을 해야 한단다.

그동안 파리에서 작업한 작품 중에는 한 변의 길이가 270cm를 넘는 대작(大作)도 있다 하니 성공리에 파리 전시도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