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의 끝, 녹동항 건너편에 있는 섬이다. 이 섬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일제 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해 이곳을 고립된 땅으로 만들면서다.
1962년, 한센인들이 격리되어 있는 이곳 소록도에 한 외국인이 들어왔다. 반인권적인 탄압과 차별을 받으며 살고 있는 한센인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한국에 온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였다. 영아원에서 한센병 환자의 아이들을 돌보았던 마리안느 수녀는 한센병 치료 전문교육을 받기 위해 인도로 가 치료법을 공부하고 다시 돌아왔다. 4년 뒤, 또 다른 외국인 수녀가 들어왔다. 마가렛 피사렉 수녀였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같은 학교(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다닌 기숙사 룸메이트였으며 가톨릭 소속 단체도 같았다. 간호사였던 이들은 당초 소록도에서 5년 동안 봉사하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들의 일상은 오로지 한센인들을 돌보는 일. 한센인들의 고통을 나누며 치료하기 위해 쏟는 헌신은 눈물겨웠다.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것은 2005년. 노인이 되면서 몸이 약해져 일상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귀국을 선택했다. 40년 넘게 살아온 소록도를 떠날 때도 이들은 주민들에게 편지 한 장만을 남겼다.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부족한 점이 많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어 감사하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감사 편지였다.
떠나는 뒷모습까지도 아름다웠던 소록도 천사들의 숭고한 삶의 이야기는 2017년,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그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에게 선물과 친전으로 감사를 전하며 근황이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병을 얻어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던 소록도의 천사 마가렛 피사렉 수녀가 지난달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던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도 세상을 향한 헌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검까지도 의대에 기증해 좋은 연구에 쓰이도록 했다. 건강이 악화되기 전 스스로 세웠던 뜻이었다.
1966년에 소록도에 들어와 40여 년 동안 한센인을 돌봤던 마가렛 수녀는 소록도 주민들에게 ‘작은 할매’로 불렸다. 새벽마다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해 우유를 만들어 나누고, 환자들의 상처를 망설이지 않고 맨손으로 약을 바르며 웃음으로 주민들을 대했던 ‘작은 할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찍었다는 사진 속에서 그는 합죽선 선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랑으로 헌신했던 그의 생애에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