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리기' 빛과 그림자

몇 달 전 속초와 산청의료원에서 연봉 4억, 3억을 보장했는데도 응급실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뉴스가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귀하신 몸’ 의사 모시기 전쟁은 이 곳뿐 아니라 전국 지방 어느 지역이나 다르지 않다. 수 억대 연봉에도 이들이 아랑곳하지 않는 건 지역 소멸 위기에 따른 열악한 생활 환경 탓이다. 이런 기류는 워라밸 선호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 개인 병원 공백이 커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파격적으로 의대 정원의 확대 방침을 밝히자 보기 드물게 여야가 환영 입장을 낸 것만 봐도 의료 공백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방의 의료시스템 붕괴는 막지 못할 거란 시각이 여전하다. 의사 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삶의 질 관점에서 지방이 이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데 있다. 

‘뺑뺑이 사망 사고’ 는 지방 의료 공백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를 못 받고 길거리에서 죽는 경우다. 의사를 대폭 늘리고 공공의대를 신설해 강제 배치를 한들 그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사명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당장 의사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확대는 불가피하고, 공공의대를 통해 지방 필수 의료 인력을 확보함은 선택 여지가 없다. 그러면서 의사 스스로가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 마련도 필수적이다. 실제 지방의료원 병상 가동률이 코로나 이전보다 평균 41% 줄어 월급조차 못 주는 데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 의료계의 냉철한 판단과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 의대 정원 확대에 맞서 총파업 불사를 외치며 으름장을 놓고 정부와 국민을 압박하는 그들에게 이성을 촉구한다. 심지어 종합병원조차 진료 과목에 따라 의사 쏠림이 심해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이대로 놔둘 텐가. 그리고 의사가 절대 부족해 의료 생태계 파괴가 현실로 다가온 지방의 응급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겪는 건 환자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뒤틀린 의료계 현실을 외면해야 하는 것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의사협회가 확고한 명분을 내세워 반대 투쟁을 해도 국민들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밥그릇 싸움’ 으로 인식하는 게 문제다. 

전체 의사의 30%가 서울 지역에 몰린 상황을 감안하면 강제적 의무복무 기간이라도 지방에서 근무할 수 있는 공공의료 인력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의대의 뿌리는 지난 2018년 폐교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에서 출발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4년 남원 개교 약속까지 했으나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무산된 바 있다. 그 뒤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법안은 15개로 지역 간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이다. 의대가 지역에 없는 전남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의대 정원 확대를 환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은 공공의대 초기 남원에 기득권이 있을 때 상황이 우호적이었는데 기회를 놓친 것이다. 김영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