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와 험지 출마

험지(險地)란 다니기에 위험하고 어려운 땅을 말한다. 탄탄대로를 놔둔채 누구인들 험지를 다니고 싶겠는가. 하지만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험지를 가야 할 경우가 있고, 먼 훗날 그런 선택이 큰 열매를 맺는 수도 있다. 항우의 견제를 받아 오지인 한중에 갖힌 유방이 훗날 천하를 통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본 전국시대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회심의 일착이라 여기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험지인 에도에 처박아 버린 것 역시 당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중진 험지 출마’ 권고에 대한 파장이 여의도를 강타하고 있다. 권성동과 더불어 윤핵관의 중심 인물로 꼽혔던 장제원의 저항이 연일 도하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국회 부의장을 지냈던 아버지(장성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원 3선가도를 달리고 있는 장제원은 요즘 험지출마론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급기야 장 의원은 지난 11일 외곽 조직 산악회 회원 4200명을 버스 92대로 체육관에 동원, 한껏 세과시를 했다.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렸는데 쉽게말해 험지 출마를 하지않고 부산에서 쉽게 당선되겠다는 거다. 그의 거취가 추후 다른 중진은 물론 야권의 험지 출마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북 정가에서도 과거 험지 출마론이나 중진 불출마가 왕왕 화두로 등장하곤 했다. 중앙정계에 두각을 나타냈던 전북정계의 거물들은 과거 험지 출마로 인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7선의원을 지냈던 소석 이철승의 경우 군사정부의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7선을 모두 전주권에서 달성했다.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김원기 역시 정읍에서  6선을 달성했다. 역시 6선의원을 지낸 정세균은 고향인 무진장을 기반으로 4번 당선됐고, 19대와 20대때는 험지인 종로에 진출, 잇따라 당선되면서 국회의장과 총리까지 지냈다. 4선 의원과 집권당 대선 후보를 지냈던 정동영은 전주 덕진에서 2번 연속 당선되면서 일거에 중앙당 수뇌부 자리에 올랐으나 대선에 실패한 뒤 험지인 동작구을, 강남구을, 관악구을 등지에 나갔다가 낙선했다. 결국 그는 다시 전주 덕진에 돌아와 당선되기도 했다. 정동영 전 의원의 경우를 보면 지역구를 지방에서 서울로 옮겨서 당선되는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19대 총선 당시 정진석 새누리당 의원(당시 3선, 서울 중구)을 비롯,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당시 3선, 서울 강남 을),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당시 4선, 서울 송파 을) 등이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작금의 전북 정가는 중진 불출마 요구를 받는 사람도 없고, 험지인 수도권 출마설이 나도는 사람도 아예 없다. 이젠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전북에는 전무하다는 얘기다. 여와 야를 막론하고 가열 조짐을 보이는 불출마나 험지출마론을 둘러싼 길항작용의 최종 결과가 주목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