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문화’를 넘어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도에 문화 분야 정부 예산이 전체 대비 1.02%가 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문화 대국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고 평가한다. 이즈음 등장한 말이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이었다. 영화 <쥬라기공원>(1993년)이 자동차 150만 대 수출대금과 맞먹는 돈을 벌었다는 담론은 ‘돈이 되는 문화’를 뒷받침하였다.

대통령이 나서서 한 ‘문화가 곧 돈’이라는 말은 모든 문화 활동의 핵심이 되었고, 문화를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에 국가, 지자체, 민간 분야까지 나섰다. 정부마다 문화산업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는데, 결과는 창대하였다. 게임 등 경제적 가치가 어마어마한 콘텐츠산업이 새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한 한류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지역 전통문화를 활용한 축제나 상품으로 지역경제를 살린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00년에 들어선 뒤로 20년 넘게 문화가 돈이 된 시대였다.

굴뚝 있는 공장에 상응하는 돈을 문화가 벌어준다고 하니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을 돌아보면 문화로 돈을 벌면서 본래 있던 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진 전주 풍남제가 그중 하나이다. 

단옷날에 열린 풍남제는 난장이 유명하였다. 풍남제를 가는 게 의무이듯이 생업에 바쁜 부모님도 “풍남제는 꼭 가봐야지”라며 난장을 찾았다. 유명한 가수가 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난장은 인산인해였다. 사람 구경, 싸움 구경이 전부였지만 전주시민은 “축제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라면서 양기(陽氣)가 가장 세다는 단옷날에 ‘일탈의 카니발’을 즐겼다.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에 풍남제도 관광 축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문가와 언론은 비위생적인 음식과 바가지요금뿐인 난장에 어떤 외지인이 지갑을 열겠냐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자며 일탈의 요소를 지워갔다. 질서정연한, 전통이 두드러진 행사로 채워진 풍남제에서 더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바가지도 사라졌다. 

하지만 재미도 없어졌다. 없어진 재미만큼 시민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외국인은 고사하고, 기대했던 국내 관광객도 오지 않았다. 돈 버는 문화로 지역을 살리자는 전문가와 언론의 외침에 전주를 대표하던 시민 축제만 사라진 셈이다.

창조산업을 이끈 영국에서도 ‘돈을 버는 문화’에 회의적 시선이 많아졌다. 문화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돈에만 있지 않으며, 사회적 배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문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경제적 기능 중심에서 사회적 기능으로 문화의 역할을 확장하자는 움직임이다. 

풍남제는 1년에 한 번 시민이 찾는 일탈의 장소였다. 생업에 힘듦을 난장에서 해소하고 일할 힘을 충전하는 카니발이었다. 시민 축제로서 풍남제의 사회적 기능이 이러하였는데, 문화가 곧 돈이라는 이슈에 휩쓸린 나머지 우리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지워버린 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지역사회 문제를 문화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문화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갈등, 범죄,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안을 문화적으로 찾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둔 지역문화정책의 시선은 여전하다. 돈 버는 문화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경제적 가치에만 주목하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본래의 가치를 상실한 문화는 돈을 벌 수 없다. ‘돈 버는 문화’ 너머에 있는 문화의 다양한 가치에 시선을 옮겨보자.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