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두 페이지가 있어요
그날을 낭떠러지로 밀어 버렸어요 첨벙 잠기는 소리 수도 없이 들었건만 과자를 커피에 적셔 베어 문 순간, 또 솟아 올라와요 묻고 가는 백 삼십 년 동안 해와 달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봉인된 그 페이지에 문득 촛불이 켜져요
뜯어진 악보 때 묻은 낱장을 눈물로 헹궈요 무릎 꿇고 전주가 시작되자 새가 날아요 내 몫의 눈물을 물고요 나뭇가지 흔들리고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지나요 신기루는 보이는데 오아시스는 그 어디에도 없어요
△ “누구에게나 두 개의 페이지가 있”다는 말은 같은 페이지의 그늘과 양지를 말하는듯하다. “촛불이 켜”지는 순간은 130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성가곡 페이지를 모차르트가 알린 순간과 그동안 미제레레를 몰랐던 서정적 자아에게 성가곡의 감동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때 묻은 낱장”을 눈물로 헹구는 일은 그간 은폐되었거나 실토하지 못했던 그늘이 “새”가 되어 날아가는 일. 신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김제 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