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다시 축제의 계절이다. 설국을 기다려온 겨울축제들이 전국 곳곳에서 줄지어 열리고 있다. 올겨울 전북은 유난히 시리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 때인데도 분위기가 냉랭하다. 그래도 철따라 열리는 잔치는 거를 수 없다. 지난 주말 전북 곳곳에서 겨울축제가 일제히 개막해 2~3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임실 산타축제와 진안 마이산 겨울동화축제, 무주 꽁꽁놀이축제 등이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서는 소식이 없다. 2012년 시작돼 겨울철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남원 ‘지리산 바래봉 눈꽃축제’다. 매년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약 50일 동안 바래봉 자락 설원에서 열리는 눈꽃축제에는 전국에서 수만명의 방문객들이 몰려 추억을 쌓았다.
지리산 바래봉 자락에서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특히 봄철 철쭉제와 겨울 눈꽃축제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두 축제 모두 민간단체인 운봉애향회가 주최‧주관하고 남원시가 후원한다. 남원시가 직접 행사를 주최하는 춘향제‧흥부제와 달리 지역민과 행정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눈꽃축제가 올해 심상치 않다. 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사실상 올겨울엔 축제를 열 수 없게 됐다. 아직껏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어 지연 개최도 쉽지 않다. 이대로면 다음해에도 축제 정상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
기후 탓이 아니다. 주관단체인 운봉애향회와 매해 2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후원기관 남원시의 갈등이 이유다. 여기에 남원시의회가 축제 회계 내역 비공개 등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실타래가 복잡하게 꼬였다. 행사가 열리는 시유지(지리산허브밸리)에 설치된 컨테이너박스와 대형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 처리 문제가 발단이 됐다. 이들 가건물은 안내소와 먹거리장터‧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축제 기간에 한정해 부지 점용허가를 내주고 있는 만큼 일단 이를 철거해 허가 조건을 이행한 후 다시 점용허가를 신청해야 한다는 게 시의 주장이다.
지난해 겨울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축제를 재개해 큰 성황을 이뤘지만 1년 만에 다시 중단사태를 맞게 됐다. 여기에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온 ‘바래봉 철쭉제’도 최근 들어 ‘꽃 빛깔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과 함께 방문객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관광자원 관리 부실과 방만한 행사 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천혜의 자연자원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았던 지리산 바래봉 자락 축제들이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물론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면 행사를 한 해 거르더라도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행사 주최‧주관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 발짝 물러나서는 안 된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바래봉 철쭉제와 눈꽃축제는 관광 남원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시린 계절을 보내고 바래봉의 눈꽃과 철쭉이 더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