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인가 보다. 여기저기서 마음 바쁜 정치지망생들의 출판기념회가 손짓한다. 후원금도 걷고 사람도 모아 얼굴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출판기념회마다 저자에게 눈도장을 찍는 사람들이 책 한 권씩 들고 나선다. 애써 만든 책은 아마 한 번 쓱 훑어보다가 재활용 박스로 직행할 것이다. 정치지망생이 저마다 꿈과 비전을, 그리고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지만 그다지 울림이 없고 그밥에 그나물인 능력과 인물군에 정치 무용론이 나오기까지 한다. 그놈이 그놈 같고, 좀 새 인물로 바꿔도 보지만 여전히 함량 미달이다. 어떤 정치 평론가는 인물을 안 키워서 그런다고 하고, 어떤 평론가는 일당 독식하는 정치지형 때문이라고 한다. 이유라면 정말 이게 다인가? 선거는 정말 민주주의 꽃인가? 선거는 정말 최선의 정치 제도인지 의심해본 적 있는가? 선거제 자체가 한계에 다다르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정치인들만 욕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나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을 바꾸고 당을 바꾼다고 해서 정치가 나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각 정당에서 선거를 앞두고 얼마나 많은 젊은 피들을 수혈해왔는가?
1992년, 현역장교로 군 부정투표를 양심 선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정한 선거제도를 이끈 이지문 박사는 대안으로 추첨제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첨은 민주적이요, 선거는 귀족적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맞는 말이다. 선거 한 번 치르자면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데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전북 광역단위만 해도 도내에 플래카드 한 번 거는데 수천만 원이 든다. 그걸 한두 번 해서는 얼굴 알리기가 힘들다. 문자 발송비도 한 번에 수천만 원씩 드는데 아무리 돈 안 쓰는 선거를 한다 해도 수억 원이 금방 바닥난다. 이러니 정책경쟁보다는 죽기살기로 선거투쟁에 뛰어들고 패자가 되는 순간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따라서 돈 없는 사람은 선거에 나오기 어려우니 현행 선거제도는 당연히 귀족적이다. 더구나 막강한 자본을 배경으로 한 시장과 언론이 여론을 조작하고 선동하기까지 한다. 또한 사람들은 뇌 구조상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대신 판단하기를 좋아하기에 선거제도의 맹점이 있다. 합리적 판단 대신 진영논리에 의한 확증편향과 이미지 정치에 놀아나기 쉬운 현실을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평등한 1인 1표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한다고 민주주의는 아니다. 유럽 내 가장 지적이고 민주적이었던 바이마르 시대에 선거로 선출된 독일의 히틀러가 그 증거이다.
이미 추첨제 민주주의는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법원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추첨이 그러하다. 재판 결과가 기존의 판사 결정과 80% 유사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추첨제로 뽑는 것이 어렵다면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정상적인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제를 실시해보는 것이 어떤가? 지구당 당협위원장에 줄을 안 서도 되고, 돈도 들지 않는다. 상갓집마다 좇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정치를 꿈꾸어보자. 재선을 꿈꾸지 않기에 부패할 필요가 없고 상식과 소신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정말 민주적인 지방자치를 만들어보자. 중앙의 정치 풍향에 눈치나 보는 정치. 영향력 있는 지방의 건달이나 토호들에게 돌아가는 이 비민주적인 정치를 끝장내는 발칙한 상상, 새해 벽두에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떤가?
/문상붕 도서출판 파자마 대표
△문상붕 대표는 전북국어교사모임 회장∙정읍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