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70 먹을 때 까지는 김치 담가줄게.”
임실군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친정엄마가 나에게 했던 약속이다. 자식 중의 한 명은 가까이 살기를 바랐던 엄마는 전북에만 살아준다면 쌀과 김치는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셨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쌀과 할머니가 담가주신 김치를 먹고 자라고 있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올해 어느덧 일흔이 되셨다. 엄마의 일흔을 아주 막연하게 먼 훗날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성큼 현실로 다가와 버렸다.
농촌으로 시집을 오셨던 친정엄마는 일평생 마을의 막내로 사셨다. 농촌 마을에 더는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던 탓에 마을에서의 막내 역할을 평생 벗어나지 못하셨다. 그런데 마을의 막내가 이제 70세가 되었으니,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내 고향이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12월 1일 기준 농가 인구는 216만6000명으로 전년 대비 4만9000명 각각 감소했다. 20년 전인 2002년 208만1,900가구, 522만2900명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통계청에서는 고령에 따른 농업 포기, 전업(轉業) 등으로 전년 대비 농가는 8000 가구(-0.8%), 농가 인구는 5만 명(-2.3%)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고령 인구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49.8%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우리나라 전체 고령 인구 비율인 18%에 비해 농촌은 2.7배가량 많았다. 경지 규모로 보면 1.0ha 미만 농가가 75만 1000 가구로 전체 농가의 73.5%를 차지했다. 3.0ha, 이상 농가는 7만 4000 가구로 전체 농가의 7.2%에 불과했다.
농민은 왜 사라졌을까? 농산물 개방에 맞선 규모화 일변도의 경쟁력 강화정책이 70%가 넘는 가족 소농을 재촌 탈농으로 내몰았다. 농촌은 학교와 병·의원이 사라지고 목욕탕과 예식장, 식당과 슈퍼마켓조차도 문을 닫고 있다. 버스마저도 줄어들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편의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생활편의시설이 줄어들고, 일상 생활환경이 나빠지자 사람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농민이 사라진다면? 캐나다 벤쿠버에는 농민이 20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마저도 규모화된 수출농으로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을 수 없게 되자,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게 되었다. 뒤늦게 벤쿠버 푸드 전략을 수립하고, 로컬푸드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아직 농민이 남아 있을 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의 농어민 기회소득을 주목할 만하다. 농어촌 고령화에 따른 청년 및 귀농어민들의 농어업 활동,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는 환경농업인들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 청년농업인, 귀농어민, 환경농어업인 1만7700여명에게 월 15만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한다. 또한, 전북특별자치도의 광역먹거리 선순환 시스템 구축도 주목할 만 하다. 1 시∙군 1 공공급식센터 설치를 통해 시∙군 및 광역단위 먹거리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가족·소농을 재생산하는 계획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농민을 국토를 지키는 공무원이라 칭하며, 농업·농촌은 국가의 근간이라 말했다. 지역으로서의 농촌, 임시방편적 대증요법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얻을 수 없다. 일자리와 소득, 삶의 질이 보장될 때 비로소 농촌에 사람이 온다. 근본적인 대책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이효진 (사)세상을바꾸는밥상 대표이사
△이효진 대표는 완주소셜굿즈센터 센터장·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경영기획실장을 역임했으며 사회적협동조합 완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사단법인 한국사회적농업협회 이사·재단법인 완주먹거리통합지원센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