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미인보다는 미식가가 좋다

안효주

요리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던 시절, 그저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 주방에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홀 직원은 대부분 여자인데 주방에는 여자가 전혀 없었다.

 '왜 여자가 없지? 모든 집, 음식점도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여자인데 왜 주방에는 여자가 없을까?'

나는 잠시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풍경에 익숙해졌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작은 식당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요리를 하는 경우다 많은 데 좀 큰 식당들은 주방장은커녕 요리사도 남자들이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는 개도 노는 것이 눈치가 보일 만큼 바쁜 농번기가 되면 누구나 한몫해야 했는데 여중생이라도 예외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야 했다. 반면 남자애들은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니 남자보다는 여자 요리사가 많은 것이 당연한 이치였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육아 문제도 있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적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는 체력을 가장 중요한 조건에 두었다. 다른 요리는 몰라도 일식은 평균 10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는 데다 큰 생선을 자를 때는 근력도 필요하다. 내가 신라호텔에 있을 때 여자 요리사 몇을 키워 보려 했지만 시집을 가는 바람에, 혹은 힘에 부쳐서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여자는 역시 힘이 달려 일식 요리에는 맞지 않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김선미' 씨를 만났다. '김선미'는 맹렬여성이고 요즘 말로 하면 '알파걸'이었다. 홀에서 일하다가 요리를 배우려 주방에 지원을 했는데 체력도 좋았고 의지 역시 대단했다. 가끔 직원들끼리 축구를 하는 날이면 다른 여직원들과 달리 축구화를 신고 남자직원들과 같이 뛰었다.

그렇게 씩씩한 사람이었는데도 지독한 상사를 만나는 바람에 눈물깨나 흘렸다고 한다. 휴일에도 출근해서 일을 시켰다. 애교로 봐줄 만한 작은 실수도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 숨어서 울었는지 내 앞에서는 눈물 한 번 글썽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여자 일식 요리사'가 아니라 '일식 요리사 김선미'가 되기를 바랐다. 다행히 내 뜻이 통했는지 지금 신라호텔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즘은 세월이 변했고 요리가 변했고 주방의 성비도 바뀌는 중이며 또한 손님들의 취향도 바뀌어 여자는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미신 같은 미덕'도 없어지고 있다. 나 역시 아직 미신의 고정관념을 다 털어내지 못한 것 같다.

몸매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에어로빅 강사 손님이 무려 초밥을 35개나 드실 때 깜짝 놀랐으니 말이다. 요리사에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저 맛있게 많이 먹어주는 손님이 좋은 손님이다.

보기 드문 미인을 눈앞에 두고 요리하는 것이 기분 나쁠 리는 없다. 그래도 예쁘기만 한 손님보다는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이 더 좋고 맛있게만 먹는 손님보다는 내 요리의 장점을 깊이 만끽하고 단점을 알려주는 손님이 더 좋다. 그렇다고 손님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요리사 안효주'가 아니라 '인간 안효주'로 마음이 살짝 기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미스터 초밥왕’으로 불리는 안효주 수필가는 한국 대표 일식 조리장이다. 청년 시절 권투 챔피언 꿈을 안고 남원에서 상경해 군 제대 후 1985-2003년까지 신라호텔 일식당 주방장을 지낸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초밥 전문점 '스시효'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