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돼지 같은 놈'은 멍청이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그런데 돼지들은 절대 명청한 동물이 아니므로 억울하다. 돼지는 예로부터 다산(多産), 풍요(豐饒)의 상징이다. 이런 돼지에 대한 잘못 알려진 인식과 편견을 짚어 보자.
돼지는 게으르다? 이 편견은 돼지가 사육되는 장소 때문이다. 대부분 농가의 돼지는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자연스레 활동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동물원의 돼지는 오히려 부지런하고 깔끔한 특성을 보인다.
돼지는 지저분하다? 절대 아니다 그 어떤 동물보다 깨끗한데 땀샘이 없어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려고 진흙탕에 뒹굴며 체온을 식히려는 모습에서 '불결하다'는 편견이 생겼다.
돼지는 많이 먹는다? 절대 아니다. 돼지는 정해진 양 외에는 과식하지 않으며 배가 부르면 물러선다. 오히려 식탐은 인간들이 훨씬 강하다.
이 외에 돼지는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데, 개의 IQ가 30인데 돼지의 IQ는 50으로 오히려 개보다 영리하다. 또 돼지는 둔하다고 하는데 감각이 예민해서 소음 등의 스트레스에 약한 동물이다. 그리고 돼지는 수영을 못하는 줄 아는데 홍수 났을 때 돼지의 수영 실력을 보았는가?
다음은 돼지 예찬론이다. 돼지는 예로부터 풍요의 상징으로 돼지꿈을 꾸면 재수가 있다고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돼지꿈 태몽을 꾸면 복덩이를 분만할 꿈이라 했다. 어린 시절 나의 외할머니는 내가 돼지띠라 밥걱정 안 할 사주팔자를 타고났다고 귀여워하셨다.
몇 년 전 젊은 시절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우리 돼지띠 4명이 여행을 했다. 불가(佛家)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는 20대에 만나 60대까지 같은 직장에서 반평생을 함께 근무했으니 아마 전생에 형제나 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지내다 보니 주말이면 등산도 함께하고 퇴근 시간이면 대포 집에서 흉허물없이 회포를 풀며 반평생을 함께 한 막역지우들이다. 그래서 정년 후 헤어지기가 섭섭해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월 정기적으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담을 나누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년배니 살아온 과정이 엇비슷하여 무슨 말을 해도 대화가 잘 통했다.
그래서 때로는 부부간에도 자주 만나고 국내 외 여행도 여러 차례 하다 보니 흉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올해는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제주도로 갔다. 깨끗하고 아름답고 관광객을 괴롭히는 악덕 상인이나 소매치기도 없다.
안전하게 마음 편히 여행하기 좋은 관광지로 제주도 만한 곳이 없다. 도민들 의식도 선진 문화 시민다웠다. 산이나 바다 둘레길 등 가는 곳 어디서나 쓰레기도 없이 깨끗했다. 숙박업소나 식당도 청결하고 친절했으며 맛도 좋았다.
인간의 삶, 한 개인의 인생은 먼 길을 떠나는 여정과 같다. 우리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 인생 속에는 평탄하고 즐거운 길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험난한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기도 하다. 또한 절망의 늪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가 하면 손쉬운 지름길들도 있다.
인생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은 여행을 자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 돼지 부부들의 여행에서 얻은 교훈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내가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 스스로의 참모습을 용기 있게 드러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사소한 일상의 순간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찾게 되는 것이 여행이었다.
△최기춘 수필가는 한국문협, 전북문협 회원이며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수필부회장, 대한문학 부회장, 영호남수필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촌수필, 은빛수필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