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틀니

박광안

오늘도 5시에 일어나 하루를 맞이한다. 정수기에서 온수 한 컵을 따라 갑상선 저하증 약과 함께 들이킨 다음 내 분신인 틀니를 입에 끼운다. 저녁에는 각자 떨어져 자다가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면 다시 만난 틀니다.

이런 생활이 벌써 7년째다. 틀니는 아내가 한 달 동안 외손자 산후조리를 도와준 대가로 얻은 댓가다. 그러니 수고는 아내가 하고 선물은 내가 받은 셈이다.

치아는 오복 중 하나라는데 나는 불혹(不惑·40세)이 넘으면서부터 치과에 다니기 시작해 시간과 돈을 정기적으로 낭비한 셈이다. 잇몸 수술, 스케일링 등 정성을 다했지만 흔들리는 치아들은 미련 없이 하나씩 나를 떠났다. 보철하여 채우면 또 다른 치아가 빠져서 치과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치아가 좋지 않은 것은 유전이라던 데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도 이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을 옆에서 보아왔다. 이가 아리면 밤새도록 잠을 지새우는 때도 있었다. 그때는 치과병원도 없어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얼마나 통증이 심했으면 피마자 씨앗을 불에 구워 아픈 이에 대고 깨물었을까?

그러던 어머니도 결국 시골에서 무허가 의사한테 틀니를 만들어 끼웠다. 그래서 이가 오복(五福) 중 하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이런 고생이 어머니와 나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아들과 딸들도 이가 고르지 않아 1년 이상씩 치과에 다니며 교정을 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큰 돌이 씹혀 이상해서 식탁에 꺼내 놓았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이를 닦는데 앞니 하나가 없는 것이었다. 틀니를 끼우고 거울을 바라보니 가관이다. 영락없는 옛날 TV 연속극에 나오는 영구의 얼굴이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조금 전 돌이라고 식탁에 꺼내놓은 것이 떠 올랐다. 그러나 식탁은 이미 깨끗이 치워진 뒤였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으니 음식물 쓰레기에 넣었단다. 순간 아찔했지만 아내가 음식물 통을 열고 보물찾기라도 하듯 젓가락으로 샅샅이 뒤적이며 찾아냈다. 그것을 가지고 치과에 가니 오후 기공소에 맡기면 내일 오후쯤 찾을 수 있다고 해서 치과에 맡겼다. 

다음 날 10시쯤 치과에 가서 다시 만든 이빨 하나를 끼우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예전보다 안정감이 있어 보여 기분이 좋았다. 그런 데다 보험이 적용되어 2만여원 밖에 안된다니 더 좋았다. 틀니 하나 때문에 이틀 동안 일어난 일들이 눈앞에 선하게 지나간다.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과 허전함이 파노라마처럼 내게 다가왔다.

옛날 중국 변경(邊境)에 사는 노인의 말(馬)이 도망을 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낙심할 노인을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하며 태연스러웠다. 이후 몇 달 뒤 도망갔던 그 말이 준마(駿馬) 한 필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있다. 이 성어처럼 나도 예전에 불편했던 치아가 오히려 더 좋은 기능으로 돌아왔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데, 함박 웃으며 하얀 이를 내 보일 때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내 이(齒) 보면서 어쩌면 지금까지 그렇게 좋은 이를 간직하고 있냐며 부러워했다. 그래서 순간 틀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망할 것 같아 나 혼자 빙긋이 웃으며 좋아한 때도 있다. 

자기의 부족을 얼마든지 보충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박광안 수필가는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마쳤다. 덕진문학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인간과 문학 수필 신인상과 황조근정 훈장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