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백운면 노촌리에 있는 영모정은 1869년(조선 고종 때) 효자 ‘신의련(愼義蓮)’의 효행을 본받고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영모정은 정면 4칸 팔작지붕 형태로 ‘돌너와’를 사용해 지어졌다. 누각 아래 사면의 각 기둥은 거북머리 모양의 원형주초석(圓形柱礎石)을 사용하고 그 밖에는 단순 가공한 원형초석을 사용했다.
기와 대신 '돌너와'를 사용한 점은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며 이 같은 양식의 건축물은 국내에서는 아주 드물어 건축학적 의의가 크다고 평가된다. 국가지정문화유산 승격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거창신씨 ‘신의련’은 임진왜란 무렵에 살던 인물로 진안현 미계촌에서 태어나 ‘미계’라는 호를 썼다. ‘미계’는 임진왜란 당시 병이 들어 위독한 부친을 어렵사리 구한 꿩고기로 구완해 소생시켰다.
그 후 왜군이 들이닥쳐 칼로 부친을 해하려 하자 온몸으로 막아서며 자신을 “대신 죽여 달라” 애원했다. 신의련의 효성에 감동한 왜장이 신의련의 이름이 써진 종이를 태우려 하니 그 종이가 타지 않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에 왜장은 깜짝 놀라 동네 어귀에 ‘효자가 사는 곳’이라는 방을 써 붙이고 왜군들의 출입을 금했다. 그 결과, 이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많은 사람의 피난처가 됐다. 5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이 살아남을 수 있어, 이후 동네 이름이 오만동(五萬洞)으로 불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