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 주논개 열사의 충절정신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장수군과 진주시에서는 매년 논개제전 행사를 하고 있다. 논개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고증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장수군과 진주시간에는 약간의 다툼과 주장은 다르지만 애국선열에 대한 흠모와 존경심은 같다고 본다. 불행하게도 일제 강점기까지 거치면서 논개에 대한 기록들은 더 왜곡되고 많은자료가 훼손되었음은 분명하다. 다행히도 지금 남아있는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와 성해응의 <연경재전집>,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사설>, 김별아의 소설 <논개>, 논개역사문화관에 있는 내용들을 토대로 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논개는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몰락하는 신안 주씨 양반집의 규수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숙부에 의해서 팔려 나갈 뻔했으나 당시 장수현감 최경회가 막아 주었고, 갈 곳 없는 논개를 집으로 거두어 주었다. 성품이 착하고 바른 논개를 지켜보던 최경회 부인의 유언에 따라 재혼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진주성이 함락되고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되면서 경상우수사와 의병으로 활동하던 최경회마저 진주남강에 투신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논개는 스스로 기적(妓籍)에 올린 다음 19세의 나이에 진주 남강 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산화하였다. 당시 왜적에 항거하며 싸우다 지친 의병들과 실의에 빠진 양민들에게 논개의 애국충절은 큰 용기와 위로를 주는 푯대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순국선열의 생애와 충절정신에 대한 재검증과 심의를 통해서 역사를 바로 세우고 그 숭고한 정신을 제대로 이어 나가야만 한다. ’의암 주논개 열사‘로 바로 잡아야 하고, 의기(義妓)라는 기록을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개제전 행사보다도 더 시급하고 중차대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사학자와 언론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인의 힘이 매우 크다고 본다.
일찍이 수주 변영로의 ‘나라에 대한 논개의 사랑과 절개’를 읊은 시 <논개>를 다시 새겨본다.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렬은/사랑보다도 강하다/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또 작사가 이건우, 작곡가겸 가수 이동기는 애틋하게 <논개>를 노래하였다. ‘꽃입술 입에 물고 바람으로 달려가/작은손 고이 접어 기도하며 울었네/샛별처럼 반짝이던 아름다운 눈동자/눈에 선한 아름다움 잊을 수가 없어라/몸 바쳐서 몸 바쳐서 빌었던 그 사랑 그 사랑 영원하리.’ 야구장에서도 우리 젊은 피들의 함성과 응원가로 높게 울려 퍼지고 전국민의 큰 사랑을 받고있는 가요다. 이 만큼 문화예술의 힘은 크다.
내 고향 장수군에 ‘논개고향사랑재단 설립과 논개문학상 제정‘을 제안한다. 출향인들의 고향사랑 실천과 기부창구로서 기능도 하고, 문학상을 통하여 논개의 충절을 승화시켜 나가면서 ’논개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서 이규태, 변영로 선생들과 수상자들을 차레로 헌정해 주고, 112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장수초교 기수별 동창회를 매년 유치해서 자긍심과 애향심도 불러 일으키고 고향 발전에 잘 대응해 나가길 간절하게 소망해 본다. 논개사당에 올라 영정에 절부터 하고 놀았던 우리들부터 고향사랑을 실천하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관심은 애향심이 되고 곧 애국심으로 이어진다.
/류영하 시인∙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