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 전주대사습놀이

일러스트/정윤성

전주대사습놀이가 30주년을 맞았던 2004. 판소리 명창부 장원은 스물아홉 살 젊은 소리꾼 장문희에게로 돌아갔다. 이십 대 소리꾼이 명창의 반열에 오른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해 명창이 된 이 젊은 소리꾼을 향한 관심은 유독 높았다. ‘명창감이 없다는 자조적 한탄이 나올 만큼 타작(?) 환경이 신통치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소리 길에 들어서 20년이 넘는 시간을 소리 공부에 쏟아온 젊은 소리꾼의 탁월한 기량 덕분이었다. 그해, 그의 타고난 성음과 빼어난 기량에 탄복한 심사위원들은 모두 사실상 만점인 99점을 주었다. 전주대사습 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어찌 됐든 이 단단한 재목은 정체되어 있던 판소리의 새로운 동력이 됐다.

예부터 판소리 명창이 되는 길은 험난했다. 명창은 일종의 소리 실력의 우월을 가르는 등급이다. 소리를 열어주는 스승의 엄한 가르침을 품고 자기를 극복하는 치열하고 처절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얻을 수 있는 자리다.

여전히 그 기원이 분명치 않은 판소리사에서 명창이 등장한 것은 1800년대다. 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전기 팔명창(권삼득, 염계달, 송흥록, 김제철,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방만춘)이 그 시작이다. 19세기 후기에는 팔명창이 등장했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오명창이 이름을 알렸다. 그러한 명창의 맥을 잇게 한 통로가 있는데, 바로 전주대사습놀이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판소리가 묻히자 전주대사습놀이의 명맥도 끊겼다.

다시 명창이 등장한 것은 1964, 중요무형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지면서다. 박녹주 김연수 김여란 정광수 박초월 김소희 정권진 박동진 박봉술 한승호 같은 소리꾼들이 이 제도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아 명창의 반열에 섰다. 달라진 환경은 또 하나의 통로를 만들어냈다. 1975년 현대적 경연 대회로 부활한 전주대사습놀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그 뒤 오랫동안 국악인들의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자리했다. 대회가 배출한 명창들의 역할도 빛났다. 첫 명창 오정숙을 비롯해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이일주 최승희 조통달 김일구 김영자 은희진 김수연 송순섭 등 대부분 명창이 판소리를 대중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해를 더하면서 대회의 명성과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사습을 이끄는 단체의 폐쇄적 조직운영과 잘못된 관행이 원인이었다. 게다가 부정 심사와 패거리 담합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주대사습은 위기를 맞아야 했다.

전주대사습대회가 올해 50회를 맞는다. 그래서인지 의미 있는 변화와 명예 회복을 바라는 국악인들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대회를 이끄는 보존회의 노력으로 쉰 살 전주대사습의 명예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