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상숙 전주시 국제협력담당관

어머니는 1932년생, 잔나비띠다. 어머니의 세대에서 아들이란 존재는 삶의 기둥이라, 어머니 또한 아들이 세상의 전부셨다. 그 귀한 아들을 좋은 공부 시키고자 어릴 적 대도시로 보냈으나, 오빠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만 어머니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슬픔을 누군들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5년 전 노인성 치매 판정을 받은 어머니는 5분 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들에 대한 기억과 사랑만은 생생하다. 

"엄마, 천국에 가면 누굴 가장 보고싶어?"라는 질문에 어머니는 항상 "내 아들 00이지"라고 답을 한다. 두 아이를 키워온 나 또한 그 사랑의 깊이를 이제는 짐작하는지라 조금도 서운치 않고 오히려 이해가 된다.  

부모님은 딸들에게도 부족하지 않은 사랑을 주셨다. 내가 육아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려 했을 때, 두 분이 육아를 책임져주셨다.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직장에서도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아버지는 아이들 유치원 등·하교는 물론 자전거도 가르쳐주시고 공놀이도 하고, 아이들의 태권도 상대역, 공기놀이, 목마 태워주기 등 아이들의 아빠 역할을 모두 해주셨다. 또한 어머니는 아이들의 식사와 집안일 등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도맡아 주셨다. 특히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학교에 보냈던 나의 교육관으로 아이들이 받아쓰기에 어려움을 겪자, 아이들 교육에 매진하셔서 처음에 20점 받아오던 아이들이 멋지게 100점을 맞아오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두 분 모두 평생 사셨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시느라 삶의 패턴을 바꾸고 모든 것을 희생해주셨는데, 그때는 너무 당연하게 받았던 게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더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다.  

아버지는 20년 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내내 우리와 함께 하시던 어머니는 2년 전 고관절 수술로 인해 거동이 힘들고 치매가 심해지셔서 두 달 전에 요양원으로 옮기셨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찾아온 우울감이 참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숙소와 차를 예약하고, 여행에서 필수인 휠체어도 예약했다. 4박 5일의 일정은 월령 선인장 군락지, 사려니숲길, 서귀포 치유의숲, 절물자연휴양림 같은 휠체어 길이 잘 되어 있는 곳들과 맛집 투어였다. 어머니는 시공간의 혼재 속에 있기에 제주도라는 것을 곧잘 잊어버리셨고, 성인 기저귀를 하셔야 하는 불편 속에서 급하게 화장실을 찾거나 가까운 호텔을 찾아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등 어려움은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웃으며 감당할 수 있어 감사했고, 그런 중에도 서로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어머니께 여행 사진을 보여드리고 추억을 되짚어드리며, 우리는 웃을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당연히 생각하고 늘 내 자녀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나 나 자신을 새삼 돌아보며, 더 늦기 전에 어머니와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어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야 철이 드는 딸을 기다리며 묵묵히 어버이의 사랑을 보여주신 어머니께, 오늘도 다시 한번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드린다. 

/이상숙 전주시 국제협력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