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어둑발 가시지 않은 새벽, 어머니는 동네 우물에서 첫물을 길어 오셨지요. 찬물에 얼굴도 마음도 씻고 맨 먼저 부뚜막 조왕신(竈王神)께 조왕물을 올렸지요. 아련한 흑백 사진 속 일입니다.
아홉 식구 무탈을 빌었습니다. 올망졸망 새끼들 배나 안 곯리면 여한 없겠다,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냥저냥 작년만큼이면 감지덕지라고 싹싹 손을 비볐습니다. 비몽사몽 눈 비비며 오줌싸러 일어나면, “왜 벌써 일어났느냐, 한숨 더 자거라” 하셨지요.
자랑은 아버지 차지요, 근심 걱정은 죄다 어머니 몫이었지요. “수재(秀才) 났다!” 면내(面內)에 소문 자자한 큰아들은 아버지 아들이요 홍역에, 천식으로 골골대는 둘째는 어머니 혼자 낳은 자식이었지요. 숟가락 통에 숟가락이 참 많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 초파일, 명암사에 쌀말이나 시주한 주제넘은 어머니는 할머니 앞에 두어 달 고개를 못 들었지요. 절집 마당에 무지개가 걸렸네요. 저 수백 살 먹은 느티나무처럼 내 새끼들 명 길고 무성하게 해주십사, 간절한 비나리입니다. 열에 다섯은 어머니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