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최초 발포 명령자는 누군가. 정확한 희생자 수 어떻게 되는가. 행방불명자는 어디에 있을까."
민주주의가 죽음 위에 딛고 섰지만, 4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다.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전국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5·18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에 왜곡된 진실을 규명하는 과제를 모색하고자 마련한 '5·18 역사 기행'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당시 광주일보 건물이었던 전일빌딩 내외부 벽면에는 계엄군의 무차별 헬기 사격으로 패인 총탄 자국이 아물지 않은 채 참혹한 현장의 생생한 증거로 남아있었다. 벽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상흔은 잔인했던 공포의 순간, 참담했던 광경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듯했다.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웠던 시민군의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앞 5·18 시계탑은 여전히 멍울로 남아있는 아픔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인 도청 건물과 인근 은행나무 역시 탄흔이 남아있었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5·18민주화운동 첫 희생자인 당시 전북대학교 학생 고 이세종 열사가 안장돼 있다. 그의 묘비에는 '어머니 그날! 새날이 올 때까지 두손에 횃불을 들고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복판에서 우리불꽃으로 활활 타오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5·18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등 개인의 안위보다 진실을 우선하는 저널리즘 정신을 발휘한 언론인들 역시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역할을 되새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