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아 바람이 분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 망둥이가 빈 낚시를 물고 허공에서 펄떡거린다. 망태기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탈출 기회를 노리는지 묘한 움직임으로 서로를 경계한다. 진한 생명력으로 서로 살을 비비며 위로 솟는다. 공포스런 눈망울이 안쓰럽다. 몸부림치는 망둥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물은 몰려오고, 연신 낚싯줄을 놓는 아버지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아버지가 바다낚시를 할 때면 개펄은 나의 놀이터다. 진흙 바닥에서 게를 잡으며 재미있었다. 뽀글뽀글 거품으로 밥을 짓는 달랑게, 위협적인 집게발로 으스대던 농게, 겁먹은 두 눈을 곧추세워 적을 살피던 칠게, 두 눈이 툭 불거진 짱뚱어랑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옆집으로 놀러 가는 게나 거품 밥 짓는 게를 쫓아가 잡으려다 놓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래도 게 잡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게가 구멍 속으로 숨어버리면 그 구멍 속에 손을 쑥 집어넣고, 손가락 끝에 까칠한 감촉이 느껴질 때 게딱지를 잡아 꺼내는 요령도 터득했다. 게 잡는 재미에 푹 빠졌을 때쯤, 손가락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는 놈을 만났다. 게를 떼어 내려고 허공에 뿌리치고, 게딱지를 잡아당겨도 보았지만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더욱 세게 조여 왔다. 살점이 떨어질 듯 아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겁에 질려 울고 있을 때 아버지는 “게를 허공에서 떼어 내려고 하면 게도 저 살려고 더 꼭 물고 늘어지지. 그럴 때는 게를 땅바닥에 놓아주어야 한단다. 그래야 게도 저 살려고 너를 놓고 도망가지.” 하신다. 딸에게는 관심도 없이 낚시만 즐기시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물린 손가락이 너무 아파 아버지 말씀대로 게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때에야 게도 내 손가락을 풀어주고 도망쳤다. 손가락 살점에 구멍이 나고 피가 흘렀지만 살기 위해 도망가는 게를 잡지 않았다.
놀다 지치면 둑에 앉아 물길을 봤다. 갯골을 메우며 차오른 물이 순식간에 둔덕을 감추었다. 둔덕이 물에 잠기니 통통배가 뜨고 낚시꾼들은 바다에서 밀려났다. 아버지는 갓 잡은 망둥이를 초장에 찍어 입안에 가득 넣고 막걸리를 따른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어. 그걸 다 채우려 들면 낭패를 보는 법이여. 물이 들어오는데도 자꾸 고기가 문다고 낚시를 하고 있으면, 물은 항상 낮은 곳부터 차오르기 때문에 갯골에 물이 차서 건너오지 못하고, 그만 망둥이가 사람을 잡아가기도 허는 법이여.”하시며 긴 낚싯대와 망태기를 짊어지셨다.
아버지는 처자식을 건사하려고 희망의 땅을 찾아 초전리로 오셨다. 일본인들이 쌀을 착취해 가기 위해 개간한 땅, 짠물이 솟아 우물조차도 만들 수 없었던 땅, 밭농사를 짓지 못하고 벼 수확만으로 살아야 하는 마을이었다. 아버지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칠 남매를 기르셨다. 오빠들은 농사짓는 일꾼이 되었고, 일꾼이 많은 아버지는 농토를 늘려 부농이 되셨다. 아버지가 농사지은 쌀로 밥을 지으면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그런 쌀을 소달구지에 싣고 새챙이다리를 건너 솜리장으로, 만경을 거쳐 김제장으로 내셨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풍물을 가르치셨다. 각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한마을에 어우러져 살아야 했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데는 풍물만 한 것이 또 있었을까. 정월에 지신밟기, 칠석에 기접놀이를 하고, 농사철에 물꼬 싸움으로 섭섭했던 마음들을 풀 수 있도록 했다. 아버지의 바다에서 파도가 춤을 추듯, 마을의 애경사가 풍물 가락에 파도쳤다. 설장고 가락을 바닷물에 풀어 터를 다지며 낯선 땅에 정을 붙이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한숨을 받아내던 그 바다가 꿈을 일구는 새만금 옥토로 변해 간다. 수평선 너머로 맑은 햇빛이 일렁인다.
△박귀덕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부회장, 전북여류문학회 회장,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행촌수필문학회장을 역임했다. 작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사막으로 가는 배>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