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촌집에서 소와 닭과 함께 살면서

장하열 (철학박사, 산서도서관운영위원장)

나는 산서면에 귀촌하여 살면서 송아지를 키우면서 타고 다니고 싶은 '로망'에 사로잡혔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소를 키우시는 걸 보고 소를 몰아 풀밭에서 놀며 자랐던 때의 추억을 60년이나 흐른 이제야 체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동생 친구가 소를 키운다기에 부탁해서 중간 크기 소 한 마리를 가져왔다. 그것도 언제 임신한지를 잘 모른다는 암소다. 나는 송아지를 키워가면서 ‘목우십도송’을 체험하고자 했던 터라 부담이 되어서 망설였다. 

이것 참 야단났네. 예부터 농가에서 소 한 마리 먹이려면 꼴머슴 한 사람 딸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게다가 함께 지내던 김씨도 갑자기 가버리고 새끼 밴 소 한 마리가 먹어대고 배출한 소똥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고 맙소사 기다리자 그 사람 올 때까지만...’ 웬걸 1년이 거의 다 돼도 안 오고 소는 감별사에게 알아보니 임신한지 수개월이 되었고 나는 소에 매달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래도 ‘원우’라고 작명을 하고 정성을 다했다. 새끼 밴 것이 분명하여 출산 달의 달력에다 날짜를 세어가면서 이제나 저제나 새끼 받을 준비를 하며 긴장하고 있는 중에 새끼 날 징후가 보이는 것 같아 친구한테 물어보니, 자기 일 아니라고 무성의하게 대답한다. 내 성격에 그런 소리 들으면 특수한 상황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달려와서 함께 지내면서 그 애로를 들어줄 수도 있을 텐데...나 같은 줄 알고 착각한 것이 실수요, 더 간청을 하지 못한 게 탈이 되었다. 어찌 우리 인생살이가 지나간 뒤에 후회한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잠에 취해 송아지를 잃어버린 안타까움

그날이 원우가 새끼 출산할 날이고, 시간은 밤 12시경이었던 것을 이튿날 아침에야 알게 되었다. 소가 새끼를 낳을 시간쯤에 난데없이 독거노인이 살고 있는 내 집 거실에 달아놓은 경보기가 울렸다. 나는 “불도 안 났는데 119에다 알리는 경보 방송이...웬 오작동이야?”하며 혼잣말을 하고, 그냥 녹아 떨어져 잠을 잤다. 그때가 송아지 분만 골든타임인지를 모르고 잠에 취해 자다가 송아지를 잃은 것이다. 참 묘하다. 어쩜 그 시간에 경보기가 운다냐. 그 소리 듣고도 어쩜 잠에 취해 코를 골아버렸다냐. 경보기가 그렇게 소리를 내도 모르고 잠에 빠진 것이었다. 송아지 분만의 실제 경험은 없고 이론적으로만 고작 4일간 한우 사육에 대해 배운 나로서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힘겹게 욕심으로만 지탱하여 온 것이다. 이렇게 쓴맛을 보고는 도저히 나 혼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다시 소 가져온 그 집에다 반환 조치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도 텃밭을 기름지게 소똥을 섞어 부식 시켜 만든 퇴비가 최고로 좋은 거름이라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나하고 같이 살았던 원우는 내가 베어다 준 풀을 먹고 엄청난 배설물을 준 덕에 텃밭 가꾸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 없다. 이를 보고 체험 시가 떠올랐다.

제목: 우리 집 믿음직스런 너 

 네가 있어 마음 따듯했으나 넌 나의 손발 한껏 부리니 참주인은 누구였을까.

 쉼 없는 너의 파란 되새김에 텃밭작물은 더욱 풍성하였어라.

 소등에 타고, 우마차 몰고 다니고자 한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목우십도송’을 체현해 보려는 꿈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구나.

 

결국, 나의 로망이었던 소 키우기는 귀향 1년 만에 노망(老妄)이 되고 말았다. 

/장하열 (철학박사, 산서도서관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