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총'의 창극화를 바란다

노경식 (극작가, 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

지난번 '타향에서'의 글  "남원의 역사유적 만인의총"(4월 11일)을 잇기로 한다. 1986년에 국방부 육군본부의 정훈감실 기회에 의해서 나의 극작품(戱曲)  <만인의총>이 제작되었다. 그해 하반기와 이듬해 87년까지 걸쳐서, 후방(대구)과 전방(원주)의 연대단위 예하부대 및 해당지역의 주민 위문을 겸한 순회공연을 가짐으로써 크게 성공을 거두고 좋은 평가를 받았음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남원 땅 고향의 역사 유적지가 나의 창작품 소재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행운이며, 또한 큰 기쁨이고 자랑이랴!

그러고 나서 6년이 흘러 2012년에 나는 뜻밖의 희한한(?)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된다. 풍천임씨(豐川任氏) 문중의 임영훈(任永勳) 장군(예비역)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그는 과거에 사명당기념사업회의 일로 더불어 일행이 되어서, 사명당의 일본 유적지를 찾아 교토(京都)를 탐방하고 심포지엄을 갖는 등 함께 여행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역사극 <두 영웅>의 주인공 유정(惟政) 큰스님 사명대사의 속성(俗姓)이 풍천임씨여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 <두 영웅>의 내용은 임진정유재란의 참혹한 7년 국난(國難)이 끝나고 나서 사건이다. 전란 때의 영웅 의승병장(義僧兵將) 사명당께서 일엽편주 현해탄을 건너서 전후처리를 위해 원수의 땅 일본에 입국한다. 그리하여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서 담판을 짓고, 향후 260여 년 동안의 한일간 양국평화와 선린우호의 주춧돌을 쌓는다는 기둥 줄거리.

여기서 기적 같은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읍성은 일본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6만 왜병의 공격을 받아서 성이 함락되고 민관군 1만인이 옥쇄 순국하였으며, 산하가 모조리 불타고 파괴되고 폐허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남원부사(南原府使) 임현(任鉉)사또의 어린 손자(5, 6세)가 왜군에 납치되어 일본 쿠슈(九州)의 남단 다네가 섬(種子島)으로 끌려가게 된 것. 그 어린 손자가 일본 땅에 살아남아서 400년이 흘러간 오늘까지 핏줄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의 성씨는 사성(賜姓)으로 ‘이노모토’(井元). 이노모토 집안은 그곳 명문으로, 큰어른 이노모토 마사루(井元正流)옹은 동경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출신이며, 그곳의 3선 민선시장까지 지낸 유명인사라고 한다. 임씨문중에서도 그런 한스럽고 피 맺힌 이야기를 수년 전에사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통교(通交)하게 되고 양쪽 집안이 상호방문하는 등 우의와 친교를 다졌다. 그리고 이노모토 가족 일행이 한국을 방문하여, 남원의 만인의총과 충렬사(忠烈祠)에 참배하고 순의제향(殉義祭享)을 올렸다는 것. 한 가문의 흘러오는 뜨거운 핏줄, 그 뿌리의 혈흔(血痕)이 아니랴!

그리하여 2012년 봄 임씨문중의 기획으로 나의 책임편집하에, <충간공 애탄임현(愛灘任鉉) 남원부사 순절기>를 상재하고, 작품 <만인의총>도 새롭게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를 재창작하게 되었다. 

우리 남원 고장은 <춘향전>과 <흥보가> <변강쇠타령> 등 세 마당을 낳은 판소리의 탯자리이자 본향(本鄕)이다. <만인의총> 역시 판소리 창극으로 멋지게 탄생하는 그날을 희망해 본다.

/ 노경식 (극작가, 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