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책의 가교 역할을 넘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공간이 되는 특별한 서점이 있다.
일반 서점과는 달리 책장 칸을 원하는 사람에게 임대해주고, 책장 주(主)는 책장 한 칸 정도의 좁은 공간을 부담 없이 운영할 수 있다. 서점을 찾는 열성 독자에게 나만의 ‘덕질’을 신나게 향유할 수 있도록 공유해 그들의 ‘팬’이 되는 공간, ‘경원동#’이 바로 그 특별한 서점이다.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에 위치한 ‘경원동#’은 '책을 팔지만 책을 팔지 않는' 독립 서점이다.
무슨 뜻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독립서점 ‘경원동#’이 파는 것은 책이 아니다. 월 임대료 3만 5000원짜리 책장이다. 이 서점에서 책을 파는 상인은 서점 주인이 아니라 그 책장에 입주한 책장 주인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일반 서점과 비교해 제일 눈에 띄는 차이점은 ‘운영방식’이다.
책 판매액으로 그날의 매출이 갈리는 일반 서점과는 달리 '경원동#'의 수익 구조에는 책 판매량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경원동#’은 임대료만으로 운영될 뿐, 책의 판매 수익은 모두 책장 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 서점에는 총 105개의 가로 40㎝×세로 40㎝×깊이 40㎝ 크기의 임대용 책장이 구비돼 있다. 이 중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책장은 63개로, 즉 63명의 상인이 입주하게 된다. 현재는 48명이 입주해 있다.
63개 책장에 입주하는 63명의 책장 주는 책 뿐만이 아니라 본인이 판매하거나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자신 만의 독특한 콘텐츠를 책장에 진열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열어 약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서점’이라는 간판 아래 직업도 성별도 나이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삼삼오오 모여, ‘내가 좋아하는 것’을 뽐내고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신기하면서도 재밌는 오프라인 플랫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실제 지난 28일 오후 방문해 둘러본 서점의 책장에는 일반 책에서부터, 지역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았던 저자의 책, 귀여운 곰돌이 수세미, 책장 주가 직접 디자인한 머그컵,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싱잉볼(Singing bowl)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입주해 있었다.
이처럼 ‘경원동#’이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서점이 아닌 신기하면서도 기발한 공간으로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운영자인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의 지향점 때문이다.
평소 외면받는 전주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기발한 콘텐츠를 보유한 타 지역인이 모일 수 있는 거점 공간을 조성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과 매개해 파급효과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도 소통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원동#’을 유지해 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원도심 부흥과 전주의 발전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은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공부했던 도시공학이 타 지역과 지역민을 이어주는 ‘경원동#’까지 만들게 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더욱 안정적인 공간으로 거듭나 전국 각지에 널려있는 콘텐츠를 보유한 사람들과 전주의 청년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