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소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준회 농촌사회학연구자

지난 주말 마을이 오랜만에 분주했다. 초복을 맞아 청년회원들이 어르신들 모시고 복달임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순창군 풍산면 두지마을에서는 해마다 초복이면 마을주민들이 특별한 행사를 한다. 이제는 마을 안에서 직접 식사를 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몇 해 전부터는 버스를 대절하여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고 문화공연을 관람한다. 올해는 가까운 담양에서 풍성하게 식사를 하고 광주 전통문화관을 방문하였다. 할머니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예쁘게 사진을 찍었다.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국악 공연도 관람하였다.

두지마을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넓고 비옥한 뜰이 있어 ‘뒤주골’(뒤주 : 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골 : 고을을 부르는 말)이라고 불리는 마을이었다. 너른 뜰이 가까이 있었기에 사람도 많고 꽤나 부유한 마을 중에 하나였다. 또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당산제를 모시며 전통문화를 지켜왔던 마을이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젊은이도, 전통문화를 이어가며 전수해 줄 어르신도 사라져가는 마을이 되었다. 이를 지켜볼 수 없었던 마을의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것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단, 남성 중심 제사 형식의 당산제 대신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월대보름 행사로 마을공동체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2013년도부터 정월대보름이면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깡통돌리기 등 재미난 일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꽤나 유명세를 타서 순창에서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두지마을을 찾고 있다. 한편 농한기인 겨울에는 청년회가 준비한 ‘겨울문화사랑방’이 펼쳐진다. 민요교실, 아로마마사지, 의료봉사, 미용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봉사해 줄 재능기부자를 찾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겨울철에 경로당에서 심심하게 계신 어르신들에게는 기운을 드릴 수 있는 일이다. 농사철에는 새벽같이 논으로 나가시는 탓에 얼굴 뵙기도 쉽지 않아 농한기 때만이라도 젊은이들은 부모와 같은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기고 건강을 돌보고자 노력한다.

두지마을 청년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귀농·촌인들이다. 이르게는 1980년대 후반 귀농, 귀촌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부터 식량을 생산하겠다며 이주한 젊은이부터, 최근에는 도시의 삶에 지쳐 시골을 선택한 가정까지 여덟 가구가 두지마을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토론한다. 4년 전에는 점점 사라져가는 마을의 모습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라는 마을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첫 책이 구술채록과 기고 위주의 기록이었다면 두 번째 책은 사진을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농촌이 ‘소멸’되어 간다고 말한다. 관객 또는 방관자의 언어이다. 농촌주민을 대상화한 말이고 매우 폭력적인 단어이다. 농촌주민 입장에서 달걀노른자 열 개 쯤은 삼킨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말이다. 농촌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망의 시각으로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 중심의 농촌정책이 만들어져야한다. 농촌을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준회 농촌사회학연구자

 

△구준회 연구자는 순창 풍산면으로 귀농한 뒤 순창교육희망네트워크 사무국장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