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음으로 머무는 공간에서

김석우 LKB&PARTNERS 대표 변호사 

제가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 현직에서 일한 때로부터 12년이 지나서야 전주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다니는 동안 실무 수습 과정 1년도 전주에서 지내기도 하였지만, 그 이후 12년 지난 즈음에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법조삼성상이 있는 공간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북대학교 법과대학을 다닐 때 도서관에서 법률 서적을 보다가 지칠 때 였는지 아니면 법조인이 되기 위해 연수를 받던 시점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작고하신 사도 법관님에 대한 글을 접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분에 대한 평전을 여러 번 읽었기 때문에 이따끔 발길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법조의 현직에 계실 때 직위를 개의치 않으시고 도시락을 직접 싸서 들고 다니시며 일하셨던 청빈한 법조인이셨을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인 교도소를 찾아 그 분이 유죄판결을 선고한 사람을 면회하여 신앙으로 인도하시는 성자와 같으신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순전한 청년 시절 사도 법관님에 대한 글을 읽고 아주 깊은 감명을 받으며, 감동의 눈물까지 지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살아가신 인간으로서의 행로, 법조인으로 걸어가신 크고 깊은 걸음은 제 마음과 영혼의 깊은 곳에 자리잡았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물이 밤낮으로 흘러 그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은 채 사람이 거처하려 하지 않는 곳에 머무는 것처럼,  사도 법관님은 인간과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겸허함을 간직한 수도자처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분에 대한 경외심을 늘 품고 낮은 곳을 찾아다니신 분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 가운데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을 잘 낮추었기 때문이라는 현자의 경구가 있는 것처럼,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진리의 말씀에 다다르게 됩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두 분께서 형이상학적인 진리의 본체에 관하여 긴 시간 동안 담론을 나누다가 헤어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율곡 이이에게 퇴계 이황께서 고갯마루까지 걸어나와 배웅하며 작별 인사를 건네 드립니다.   

“거경궁리(居敬窮理)”, 마음을 전일하고 바르게 삼감으로 근본 이치를 깨달아 실천하라는 마음의 인사였습니다.

이러한 현자들과 성자 같으신 분의 낮음으로 가는 걸음걸이는 그 곳에 스스로 존재하시는 진리의 빛과 영광의 길이 있다는 견성과 활연관통의 경지를 넘어선 참된 신앙의 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사유해 봅니다.  

이러한 사유의 지향성은 바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을 향한 자유의지가 발현된 것이자 그분의 뜻에 따르려는 경외심에 기반을 두는 것일 것입니다.

제가 법조인으로 사는 동안 이러한 현자들의 깨달은 경구를 이정표로 삼고, 제 마음 안에서 우러나오는 가언명령이 아닌 정언명령을 꼭 붙잡고, 늘 마음과 영혼 안에 계시는 영원한 존재자에 대한 경외의 믿음으로 살아가리라 소망하고, 끊임없이 추구하리라 다짐하고 기도해 봅니다.   

제가 가끔 전주에 다녀오는 길에는 덕진공원에 가보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사도 법관님에 대한 흠모가 낮은 곳으로 내려온 물처럼 머물러 있고, 청년 시절의 열정과 의지가 호수에 피어 있는 꽃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되며, 믿음의 싹이 튼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김석우 LKB&PARTNERS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