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징표

정동영 국회의원(민주당·전주시병)

‘한 인격을 시험해 보려면 권력을 주어라’라는 말이 있다. ‘인격을 시험’ 하기에는, 방송통신정책을 담당하고 규제하는 방통위원장의 권한이 너무나 크다.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너무나 위험하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평소 자신의 SNS를 통해 5.18을 ‘폭도들의 선동’에 의해 일어난 사태라는 글에 공감을 표시했다. 또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좌파는 선전 선동에 강하다’는 제목의 긴 글을 적었다. 말미에 ‘MBC(공영방송)가 청년들을 이태원으로 불러냈다’고 했다. 

한국의 ‘극우의 징표’는 몇 가지 있다. 일례로, 5.18 민주화운동을 ‘폭도가 일으킨 사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해 폄하하거나, 이태원 참사 기획설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일반 상식과 동떨어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합리성이 부재하다. 인간애의 부재다. 이들은 그리고 ‘딱지붙이기’를 한다. ‘노영방송’이라고. 전부 이진숙 위원장과 흡사하다. 청문회하는 내내 궁금했다. 무엇이 ‘기자 이진숙’을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 그는 청문회 기간에도 며칠 내 자정이 넘도록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혐오, 노조에 대한 증오, 약자에 대한 조롱으로 일관했다.

5.18 당시에 광주MBC가 불탔다. <뉴스데스크>가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보도한 데 격분한 광주시민들이 광주MBC를 불태웠다. 역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은 신군부에 대해서 시민들의 정당한 저항권 행사라고 규정하고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나는 당시 광주에 내려가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였다. 내가 보고 듣고 취재한, 방송한 내용은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MBC 보도국에서 아침 편집회의가 열렸다. 한 간부가 광주 시민을 폭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토론이 벌어졌다. 며칠 뒤 그 간부는 계엄사에 끌려갔다. 그리고 감옥에 보내졌다.

언론의 자유는 권력을 비판할 자유를 말한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은 힘없는 사람들의 사사로운 일상을 들추는 권리가 아니라, 힘있는 권력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권리다. 

후보자 개인은 장관급 공직후보자로서 가치관·세계관·역사관이 굉장히 중요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해 후보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물었다.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가 광주시민 학살의 피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물었다. 후보자는 결국 ‘손가락 운동을 주의하겠다’고 대답했던 것을 철회하고 사과했다.

미국의 상원 인사청문회는 ‘만장일치제’다. 천여 명의 정부 요직인사를 상원이 인준한다. 청문회에서 단 한 사람의 의원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임명이 보류된다. 입법권을 존중하는 장치이기도, 입법권의 고유 권능이기도 하다. 국민께 봉사하는 주요 직책을, 국민의 대표자 중에서도 상원이 인준 권한을 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삼권분립이 가능하고 입법의 행정부 견제와 통제가 가능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 3분의 2에 달하는 위원들이 이진숙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임명을 강행하고 임명 당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선임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방송통신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원장 자리에 합당한 후보자인지, 국민은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고 있다.

/정동영 국회의원(민주당·전주시병)